지방 발령 난 남편... 그 집엔 나 몰래 시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아무튼 주말]
[별별다방으로 오세요!]
조선일보
입력 2020.11.21 03:00
어린이의 깨달음은 순진하지만 위대합니다. 청춘의 깨달음은 아프지만 눈부십니다. 중년의 깨달음은 어떨까요? 착잡한 회로를 돌고 돌아 원래도 알고 있던 지점으로 돌아오는 서글픈 깨달음입니다. 내 마음이 허한 진짜 이유를 문득 깨닫고 보니 이미 때는 늦가을입니다. /홍 여사 드림
일러스트= 안병현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요즘 저는 전에 없이 그런 말을 듣습니다. 잘난 자식의 앞길이 탄탄대로이거나, 나이 들수록 빛을 발하는 건강 미인이라서 듣는 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제 경우는 좀 어정쩡하답니다. 일 때문에 지방에 내려가 있는 남편과 떨어져 지낸다는 이유로 그런 턱없는 말을 들으니 말입니다. 친구들은 저더러 얼마나 편하냐고, 부럽다고들 하는데, 저는 겉으로만 그렇다고 하지 속으로는 고개를 젓습니다. 인생 살아보니 때아닌 편안함은 나중에 불편한 청구서를 내밀더라 싶어서요. 하긴 제 친구들도 그걸 몰라 하는 말은 아닐 테지요.
그런데 가만 보면, 부부간에 아무 문제 없는 친구일수록 제 상황이 부럽다고 더 야단입니다. 평생 가장 역할 충실히 하고 여자라곤 아내밖에 모르는 남편을 둔 친구일수록, 남편을 더 성가셔하더군요. 저는 솔직히 그런 성가신 남편이랑 한번 살아봤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제 남편은 결코 아내를 귀찮게 하지 않는 남자거든요. 처음엔 손이 안 가는 남자라서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산 시간이 쌓이다 보니 알겠더군요. 남편은 자기 관리도 잘하지만, 그만큼 자기만의 공간을 침해받기 싫어하는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을요. 혼자일 때 제일 편하고, 혼자라도 아무 부족함이 없는 남자의 아내로 사는 허전함.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그게 무슨 복에 겨운 소린가 할 겁니다.
그런 남편이니 지방 발령이 두려울까요? 속으로는 신난 거 아닌가 싶게 아무렇지도 않더군요. 저는 그에게 물어봤습니다. “나도 같이 내려갈까? **도 곧 입대하는데.” 얄미워 떠보는 질문인 동시에, 한편으론 진심이기도 했습니다. 남편이 그렇게 하자고만 하면 진짜 그래 볼 생각이었으니까요. 집 구해준다는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처럼 아기자기하고 특색 있는 집을 세 얻어, 신혼처럼 한번 살아봐도 재밌지 않겠어요. 그러나 남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젓더군요. 그럴 일은 아니라고, 당신은 이곳에 남아 오랜만의 자유를 만끽하라고요. 저는 속으로만 중얼댔습니다. 언제는 뭐 내가 안 자유로웠나?
아닌 게 아니라, 저는 여태 참 자유롭게 살아온 여자입니다. 그 흔한 시집 스트레스도 거의 없이 살았습니다.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셀프 효도’의 모범 사례가 바로 제 남편이거든요. 우리가 신혼일 때는 ‘셀프 효도’라는 말도 아직 없었는데, 그 사람은 어디서 그런 개념을 터득했을까요? 남편은 혼자 어머님을 뵈러 가는 걸 당연한 듯 여겼습니다. 나도 따라나서려고 하면, 이렇게 말하곤 했죠. “당신은 집에서 쉬어. 나 혼자 다녀올 테니.” 아이를 낳고는, 손주를 보여 드리는 차원에서도 한번씩 따라가곤 했는데 그럴 때도 남편은 어머님과 저를 둘이서만 놓아두지 않았습니다. 본인이 어머님과 주로 대화하고, 마치 통역사처럼 가운데서 양측 말을 전하곤 했죠. 안부 전화를 드리는 일도 지금껏 거의 매일 남편이 하니, 저는 그야말로 무늬만 며느리인 셈입니다.
물론 몸은 편했습니다. 그러나 마음마저 편하진 않았죠. 나한테도 역할과 자리를 좀 분배해주었으면 하는 생각마저 슬그머니 들더란 말이죠. 그런 얘길 하면 제 친정 언니는 버럭 소리를 지릅니다. “얘가 무슨 호강에 겨운 소리야? 탕국에 빠져 죽게 생긴 나 같은 사람 들으라고 하는 말이니?”
“그렇지만 언니. 나는 형부 같은 남자가 좋아. 효자 노릇 하느라 아내 고생은 좀 시켰지만, 처가에도 얼마나 잘해? 옆에만 가도 뜨끈뜨끈한 사람이잖아.”
“나는 제부 같은 남자랑 산뜻하게 한번 살아보고 싶다. 아내 고생할까 봐 어머니를 원천 차단하는 애처가가 쉽니?”
애처가라... 언니 말이 맞는 말이길, 저는 늘 믿고 싶어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씁쓸히 웃지요. 언제나 나를 감질나게 하던 제 마음속 헛헛함의 정체를 저는 며칠 전 우연하고도 사소한 사건 하나로 확연히 알게 되었거든요.
그 주는 대개 격주로 남편이 상경하는 주였습니다. 그런데 목요일쯤 전화를 건 남편이 갑자기 무슨 사정이 생겨 다음 주에나 올라올 수 있겠다고 하더군요. 저는 알았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죠. 그래놓고 토요일 오후에 기차를 탄 겁니다. 간다고 말해봤자 만류할 게 뻔하니, 말도 않고 출발했죠. **역에 내려서 택시로 집 근처까지 가서야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보. 나 지금 어딘지 알아? 당신 집 앞이야. 그 순간 침묵을 타고 고스란히 전해지던 남편의 난감함에 저는 몸이 굳어버렸습니다. 1초 만에 제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쳐간 온갖 불길한 상상에 비하면, 이어지는 남편 말은 차라리 다행스러운 것이었죠.
“어, 그래? 이 사람이 말도 없이…. 지금 여기 엄마 와 계셔.”
저는 그날 남편 집에서 어머님을 마주쳤답니다. 놀라긴 했지만,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지요. 어머님도 아들 거처가 궁금하실 테니 한번쯤 다녀가실 수 있지 않겠어요. 남편이 쓸데없이 거짓말로 둘러댄 것, 어머님도 얼마 전 통화에서 제게 아무 말씀이 없으셨던 점이 마음에 걸리지만, 그 또한 애처가의 철저한 셀프 효도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님이 변명 삼아 하신 한마디 말씀이 제 가슴을 푹 찌르더군요.
“나는 길도 설고, 안 오겠다고 하는데도 얘가 하도 성화를 해서. 그렇게 우두커니 혼자 있지 말고 아들한테 며칠 와 있으라고. 그냥 약만 챙겨서 오면 여기 다 있다고. 맛집도 많고 산에 단풍이 너무 곱다고...”
그 순간 저는 바보가 득도하듯, 지난 이십오 년간 혼자 묻고 혼자 궁금해하던 질문의 답을 알아버렸습니다. 이렇게 배려심 있는 남편과 사는데 나는 왜 마음 한구석이 늘 답답한가? 남편이 내게 하는 행동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내게 절대 하지 않는 행동이 문제였죠. 저는 남편에게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왜 내 곁에 와 있지 않느냐는 말. 몸만 오면 여기 다 있다는 말, 근처에 맛집도 많고 단풍도 곱다는 그런 살가운 말...
셀프 효도는 좋은 것입니다. 그것이 아내에 대한 배려에서 나오는 것이라면요. 그런데 제 남편의 셀프 효도는 그 이유가 달랐습니다. 어머니와 밀착한 데서 오는 것이었지요. 그 누구도 개입시킬 필요가 없는 자기만의 행복 같은 것이었나 봅니다.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었지만, 아직도 그에겐 어머니와 이룬 관계가 가장 원초적이고 편한가 봅니다. 물론 아들이 어머니와 친밀한 걸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아내인 저와는 왜 그런 게 안 되느냐가 문제이지요. 그저 천성이 ‘셀프남’이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어머니에겐 그렇게 다감하고 친근할 수 있는 걸 보면요. 이럴 거면 차라리 저는 이름난 효자랑 사는 피곤한 아내인 편이 낫겠습니다. 어머니에게도 지극하고 저에게도 아랫목처럼 노글노글 따뜻한... 그랬더라면 비록 몸은 고단했을지언정, 마음은 허하지 않았을지도요. 인생에 만약이란 없는 거지만요.
오늘같이 눈부신 늦가을 오후, 바람에 휩쓸리는 낙엽을 바라보며, 곁에 다가와 다정히 함께해줄 누군가가 아쉬운 건 결국 제가 안고 가야 할 제 문제임을 깨닫습니다.
하긴 우리네 삶 자체가 셀프 아니던가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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