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기의 사이언스토리] 과학자 72명 이름을 새긴 에펠탑이 주는 메시지
에펠탑 1층 각 방향에 새겨진 과학자‧수학자‧공학자
상당수가 엘리트 학교 ‘에콜 폴리테크니크’ 출신
프랑스 혁명 직후엔 포용보다 ‘우리 편 챙기기’ 몰두
실력으로만 선발하는 공교육으로 ‘편 가르기’ 탈피
혼란 딛고 과학자 이름 새긴 에펠탑이 주는 메시지
과학은 이념이 아니라 경계 허문 인재풀에서 발전한다
입력 2020.11.13 03:00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세워진 에펠탑. 늘 관광객들로 붐비는 이곳에는 72명의 프랑스 수학자, 과학자, 엔지니어들의 이름이 금빛으로 새겨져 있다. 수학자로는 라그랑주와 코시, 과학자로는 라부아지에와 라플라스, 엔지니어로는 카르노와 코리올리 등 교과서에 등장하는 쟁쟁한 이름들이다. 주목할 점은 이들 상당수가 특정 학교 출신이거나 관련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 이 학교가 바로 프랑스 혁명이 탄생시킨 ‘에콜 폴리테크니크(École Polytechnique)’로, 공교육이 어떻게 엘리트를 키워내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혁명이 선택한 엘리트 교육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과학자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급진파들은 국왕을 투옥하고 재판에 회부하며 공화국을 선포했다. ‘좌파(left wing)’와 ‘우파(right wing)’라는 용어는 이 재판을 둘러싼 논쟁에서 출발한다. 국왕 처형에 찬성하는 급진파들은 의회의 왼쪽 자리에 앉았기에 ‘좌파’가 되었고, 반대하는 온건파는 오른쪽에 앉았기에 ‘우파’가 되었다. 과학자들조차 좌우로 나뉘어 대립했다. 과격파의 승리로 국왕이 처형되자, 온건파 과학자들은 재판정에 세워졌다. “공화국은 과학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슬로건이 울려 퍼지며 수많은 과학자가 단두대에 보내지고,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는 폐쇄된다.
/일러스트=백형선
혁명의 전파를 우려한 유럽 왕국들은 프랑스 공화국과 전쟁을 벌인다. 장교를 맡던 귀족 계급이 혁명으로 사라진 프랑스 군대는 도시 빈민과 농민 의용군을 주축으로 구성되었다. 오로지 혁명 정신으로 무장한 의용대는 과도한 평등사상으로 투표로 전술 작전을 결정하기도 하고, 이에 반대하는 장교들을 죽이기도 했다. 이러한 광기에 휩쓸린 오합지졸을 보다 못한 군인 장교 하나가 나서서 전면적인 군대 개혁에 나선다. 그가 바로 에펠탑에 새겨진 라자르 카르노(Lazare Carnot), 열역학을 탄생시킨 사디 카르노(Sadi Carnot)의 아버지이다.
우선, 18세부터 25세까지의 남성 전부를 강제 징집한다. 이는 서양 최초의 국민 개병제로, 불과 1년 만에 프랑스군은 150만이 되었다. 150만 대군을 무장하고 먹이는 일은 쉽지 않았기에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를 위해 카르노는 프랑스 최고의 수학, 물리학, 공학자들을 모아 보급품의 생산과 관리에 모든 과학 역량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병력은 3배로 증가했지만, 운영 비용은 절반으로 줄었다. 이를 기점으로 전세가 뒤집히며, 카르노는 “승리의 조직자”로 불리게 된다. 그는 하급 장교였던 24세의 나폴레옹을 장군으로 초고속 승진시킨다. 귀족층의 붕괴로 경쟁 장교들이 없어진 나폴레옹에게 역사상 누구도 가져 보지 못한 대규모 군대가 주어졌다. 이를 발판으로 나폴레옹이 전 유럽을 지배하게 된다.
프랑스를 이끌고 있는 ‘그랑제콜’
혁명을 지지했지만 현실주의자였던 카르노는 좌우로 분열된 프랑스를 추스르는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그는 새로운 형태의 고등 교육기관을 만들어 혁명 군대를 이끌 엘리트를 선발하고 지도하도록 했다. 이 학교가 에콜 폴리테크니크이다. 이러한 전통에 따라 이 학교의 학생들은 아직도 군사 훈련을 받으며 중요 행사에는 군복을 입고 파리에서 시가행진한다. 카르노는 라그랑주와 라플라스 등을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교수로 초빙해 최고의 두뇌들을 키워내는 명문교로 만든다. 또한 폐지되었던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를 다시 열어, 에콜 폴리테크니크 출신 과학 엘리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길을 틔워 주었다.
이 학교는 신분 제한 없이 오로지 실력으로만 학생을 선발했고, 모든 경비를 국가가 부담하는 서구 최초의 공교육 기관이었다. 비로소 혁명의 편 가르기에서 탈피한 프랑스는 폭넓은 인재풀로 과학을 선도하게 된다. 이는 다른 나라들의 교육 제도에도 큰 영향을 미쳐, 아인슈타인과 뢴트겐을 배출한 취리히 공과대학(ETH)이나 미국을 과학 강국으로 이끈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등이 모두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모방해 만들어진 학교들이다. 에콜 폴리테크니크는 프랑스어로 최고의 학교라는 뜻의 ‘그랑제콜(Grandes École)’로 불리며, 이후 설립된 프랑스의 여러 공교육 기관들이 그랑제콜에 합류하게 된다. 현재 프랑스의 주요 인물들이 대부분 그랑제콜 출신으로, 오늘날의 프랑스를 이끌고 있다.
특권 세력과 소수의 인재 구별해야
한편, 프랑스 혁명 100주년 건축을 에펠에게 맡긴 프랑스 대통령의 이름은 사디 카르노로, 라자르 카르노의 손자이자 열역학의 아버지 사디 카르노의 조카이다. 그는 할아버지가 만든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졸업하고 국립 교량 도로 학교에서 공학 교육을 받았다. 당시 코시와 코리올리 등 프랑스 최고의 엘리트들이 이러한 길을 거쳐 갔다. 이러한 전통은 계속 이어져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앙리 베크렐(Henri Becquerel)과 201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장 티롤(Jean Tirole) 역시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졸업하고 엔지니어 양성소인 국립 교량 도로 학교를 졸업한 석학들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라는 프랑스 혁명은 신분 지배를 무너뜨렸지만, 평등해진 모두를 포용하기보다 우리 편 챙기기에 몰두했다. 과학은 이념이 아니라 경계를 허문 인재풀에서 발전한다는 것, 그리고 특권 세력과 능력 있는 소수의 인재는 구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에는 많은 희생이 필요했다. 이러한 혼란을 딛고 과학자들의 이름을 새긴 에펠탑이 우리에게 과학 발전과 엘리트 교육에 대해 던져주는 메시지는 적지 않다.
민태기 연구소장 에스엔에이치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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