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링컨 영혼이 1대1 과외 해주는 유치원이 있답니다

최만섭 2020. 10. 27. 05:23

링컨 영혼이 1대1 과외 해주는 유치원이 있답니다

신작 ‘소울’ 내놓은 피트 닥터 감독

백수진 기자

입력 2020.10.27 03:00

 

 

니메이션 명가 픽사의 감독 피트 닥터(52)는 사춘기 딸의 머릿속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궁금해하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만들었다. 의인화된 다섯 가지 감정 기쁨·슬픔·분노·짜증·소심이 서로 투닥거리며 인간의 감정을 만들어내는 이야기로, 2016년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았다. 그의 신작 애니메이션 ‘소울(Soul)’은 그보다 조금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23년 전 태어난 아들을 보면서 궁금해졌어요. 갓 태어난 아이인데도 벌써 성격이 있더라고요. 나한테도, 아내한테도 없는 이 독특한 개성이 어디서 온 걸까 고민하게 됐죠.”

‘소울’은 영혼 없이 살아가는 어른들을 위로할 영화다. 주인공 ‘조’는 생계를 위해 오합지졸 중학교 밴드를 가르치지만, 오랫동안 재즈 피아니스트를 꿈꿔왔다.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과 공연할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 순간,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간의 영혼이 만들어지는 ‘태어나기 전의 세상’에 빠져버린다. 그는 “처음엔 전 세계 관객의 종교나 신념과 충돌하지는 않을까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철학·종교학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받았는데, 사후 세계에 대한 예측은 많지만 태어나기 이전의 세계를 자세히 설명하는 종교는 없더라고요. 그때부터 자유롭게 상상을 펼칠 수 있었죠.”

 

아기 영혼들이 머물며 성격과 개성, 관심사를 만들어가는 ‘태어나기 전의 세상’을 몽환적인 색감과 질감으로 완성했다. 보드라운 언덕 위로 동글동글한 아기 영혼들이 굴러다니는 평화로운 세계. 닥터 감독은 “영혼을 위한 거대한 캠퍼스를 떠올렸다”면서 “그리스 신전처럼 돔과 기둥이 있는 공간을 상상했다가 조금 더 소박하고 단순하게 자연을 닮은 세계로 만들었다”고 했다. 링컨·테레사 수녀 등 죽은 영혼이 아기 영혼을 위해 1:1 과외를 하는 모습이 유쾌하게 그려진다. 주인공 ‘조’는 매사에 심드렁하며 지구로 내려가기 싫어하는 ’22번 영혼'을 만나 인생의 아름다움을 함께 찾아간다.

 

 

피트 닥터 감독의 애니메이션‘소울’은 미국 뉴욕과 환상의 세계를 오간다. 픽사 애니메이션 최초의 흑인 주인공인‘조’는 예기치 못한 사고를 겪고 아기 영혼들이 머무는‘태어나기 이전의 세상’을 체험한다. /디즈니·픽사

닥터 감독은 1990년 ‘토이 스토리’의 애니메이터로 출발해 ‘몬스터 주식회사' ’업' ‘인사이드 아웃’을 연출했다. “제가 현실 세계에서 탈출하고 싶어서 그런지 전 항상 환상적인 세계에 끌렸어요. ‘인사이드 아웃’은 이번 작품을 위한 일종의 예비 훈련이었죠.”

 

주인공 ‘조’는 픽사 애니메이션 최초의 흑인 주인공이다. ‘조’가 연주하는 재즈 음악도 흑인 문화유산을 상징한다. 시나리오 작가가 뉴욕의 흑인 동네를 취재하고, 픽사 최초로 흑인 관객을 대상으로 시사까지 거쳤다. 닥터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전체 과정에서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었다”고 했다. “디즈니와 픽사 내부에서 혹독한 시사를 거친 덕분에 시사회 반응은 긍정적이었죠. 때론 내부 평가가 고통스러워서 ‘이걸 도대체 왜 하냐’ 불평하기도 했지만, 요즘처럼 다들 화가 나 있는 시대에 영화가 공개되고 전 세계에서 혹평을 받는 것보단 나으니까요.”

 

‘소울’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 최초로 상영하고 내년 초 극장 개봉할 예정이다. 북미에선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자사 OTT인 디즈니 플러스로 직행했다. 올해 칸 영화제 공식 초청작에 선정됐으며, 아카데미 작품상 유력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닥터 감독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인생에서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았던 작은 일들에도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주의를 기울이게 됐다”고 했다. “별것 아닌 일상에서도 존재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답을 줄 순 없겠지만, 한 번쯤 인생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가 되길 바랍니다.”

 

백수진 기자 편집국 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