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한현우의 미세한 풍경] 구례의 국숫집은 어떻게 맛집이 되었나

최만섭 2020. 10. 22. 06:01

[한현우의 미세한 풍경] 구례의 국숫집은 어떻게 맛집이 되었나

카톡으로 사진 주고받는 시대에 생각난 ‘고속버스 필름 배송’
스마트폰 때문에 얼마나 많은 경험과 스토리가 사라졌을까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은 개인을 조종하는 거대 기업의 수단일 뿐

한현우 논설위원

입력 2020.10.22 03:00

 

 

 

필름으로 사진 찍던 1990년대, 춘천 주재 선배 기자가 사회면 톱기사를 썼다. 사진은 따로 찍어 고속버스 기사 편에 보내기로 했다. 내가 맡은 일은 밤 9시 40분 도착 예정인 그 버스를 기다렸다가 필름을 받아 회사로 가져오는 것이었다. 9시 20분부터 기다렸는데 버스는 10시가 돼도 오지 않았다. 그제야 알아보니 9시 15분에 이미 도착했다고 했다. 어렵게 버스 기사를 찾아내 물었더니 터미널 책상에 필름을 넣고 잠갔다고 했다. 여차하면 책상을 부수려고 망치를 빌리는가 하면 열쇠공을 수소문해서 야단법석을 떤 끝에 간신히 마감 전에 사진을 넘길 수 있었다.

/일러스트=이철원

이런 얘기를 “나 때는 말이야” 말고 어떻게 시작할 수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때 스마트폰이 있었더라면 춘천에서 사진 찍어 카톡으로 보냈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에게는 그날 밤의 식은땀 나는 경험, 촉박하고 다급함과 싸우다가 극적으로 긴장이 해소된 그 사건은 통째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스마트폰은 경험을 가로막고 스토리를 없애버린다. 필수품이 돼버린 저 기계의 시커먼 화면 속에 어떤 가공할 괴물이 똬리를 틀고 있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

고등학생 딸이 인스타그램 계정을 비활성화 상태로 해놓았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자꾸 그것만 들여다보게 돼서”라고 했다. 한번도 그런 잔소리를 한 적 없는데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한 것이 대견하고 기특했다. 딸이 말했다. “그런데 문제도 있었어요. 친구들이 자꾸 ‘왜 나를 차단했냐’고 묻는 거예요. 차단한 게 아니라 비활성화한 거라고 설명해도 잘 안 믿는 것 같아요.”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으려면 우정에 금이 가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전남 구례 한 국숫집은 딱히 다른 집과 다를 것도 없는데 늘 젊은 손님들로 붐빈다. 이 집 앞에 섬진강대로가 있고 그 너머로 섬진강이 흐른다. 강이 보이는 평상에 국수를 차려놓고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이 유행하면서 사람들이 몰린다. 식당에서는 평상에 상을 차려주지 않기 때문에 손님들이 국수 쟁반을 들고 달리는 차들을 피해 차도를 건너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이럴 때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은 국수인가 섬진강인가. 아마도 ‘그 유명하다는 사진을 나도 찍어 올린 것’일 것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든 앱이 한국인들을 구례에서 무단횡단하게 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기업에서 일했던 사람 여러 명을 인터뷰한 내용이다. 이들은 소셜미디어가 어떻게 사용자를 자극하고 조종해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드는지 증언하면서 “실리콘밸리에서 앱 디자인을 하는 50명이 20억명을 통제하고 있다”고 말한다.

구글이 2000년대 초반 ‘타깃 광고’라는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만들어 낸 뒤 IT 기업들은 제품과 아무런 상관 없는 소비자의 ‘잉여 행동’ 데이터를 수집해 왔다. 소비자가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해 불필요한 수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하버드대 쇼사나 주보프 교수는 이런 경제체제를 ‘감시 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라고 명명했다.

한현우 논설위원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은 선(善)이 아니다. 인공지능은 사용자의 행동 데이터를 축적해 돌리는 수퍼컴퓨터이고 알고리즘은 그렇게 해서 얻어낸 ‘어떻게 하면 우리 앱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할 것인가’이다. 구글부터 네이버까지, 모든 IT 기업이 그런 방식으로 돈을 버는 데 골몰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은 내가 아니라 철저히 기업에 복종한다.

다큐에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소셜미디어를 자유롭게 쓰는 사용자(user)가 아니라 그들에게 행동 데이터를 갖다 바치는 상품(product)이다. IT 기업들은 우리를 상품으로 선전해 막대한 광고 수입을 올리고 있다.” 내가 스마트폰을 켤 때마다, 아니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돌아다니기만 해도 그들은 나의 행동 데이터를 공짜로 가져간다. 혈압과 산소 포화도까지 재 준다는 스마트 워치를 찰 때는 병원과 제약 회사의 영업 사원이 내 손목에 매달리게 된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화장실에 갔더니 어떤 사람이 소변기 앞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그는 내가 일을 다 본 뒤 손을 씻고 나갈 때까지 똑같은 자세로 소변기 앞에 서 있었다. 나는 문득 스마트폰에 오만 정이 다 떨어져, 한밤중 버스터미널에서 필름 찾느라 허둥지둥하던 때가 그리워졌다.

 

한현우 논설위원 논설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