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인디언 기우제’ 부동산 정책
부동산發 불평등론 집착은 ‘자기 집’ 바라는 서민 욕망 간과
입력 2020.10.19 03:20
전세 품귀와 전셋값 폭등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18일 잠실의 한 아파트 단지 상가 내 부동산에 매물 정보란이 텅 비어 있다./연합뉴스
지난 3년여 동안 무려 23차례에 걸친 부동산 정책에도 불구하고, 또한 정책 효과에 대한 거듭된 자화자찬에도 불구하고 일반 국민들이 체감하는 주택난과 주거 불안은 오히려 가중되고 있다. 현 정부 들어 서울의 아파트값은 52% 올랐고 평균 매매 가격 역시 처음으로 10억 원을 넘었다. 주택 소유 여부에 따른 자산 격차가 심화하는 가운데 가을 이사철을 맞은 서민들은 목하 미증유의 전세대란을 치르고 있다. 난데없는 주택 경매시장 호황 소식은 다른 말로 중산층이 무너지는 소리다.
인류 역사에서 주거 생활은 태곳적부터였지만 ‘주택 문제’의 발단은 근대 이후다. 산업화 및 도시화 과정에서 선진국 대부분이 주택 문제로 심한 홍역을 치렀고, 이는 마르크스주의가 생장하는 젖줄이 되기도 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급속한 자본주의 발전 단계에서 주택 문제를 둘러싼 사회 갈등을 비교적 적게 겪었던 예외적 사례다.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을 제외하면 우리에게는 이렇다 할 대규모 도시 폭동이 거의 없었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주택난에 직면한 유럽의 노동자 계급이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던 시절,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이냐 혁명이냐”는 화두를 던지며 아파트의 대량생산·대량공급에 앞장섰다. 이러한 르 코르뷔지에의 주거 철학에 조응하여 박정희 시대 대한민국은 민간 주도·정부 지원 방식을 통해 ‘아파트 공화국’의 길로 들어섰다. 이는 당대 도시민들의 주거 안정에 크게 기여했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좌경화를 막는 중산층 방어벽이 되었다. 또한 노태우 정부의 주택 200만 가구 건설은 남북 분단 상황에서 의미가 매우 각별했다(손정목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고도 성장기 대한민국의 주택 정책에 물론 부작용도 있었고 역효과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 후발 개도국에 만연하고 있는 ‘도시화=슬럼화’ 공식이 과거 우리에게는 해당하지 않았다. 국제적으로도 우리나라 주택 가격이 유난히 비싼 것은 아니다. 주택 가격은 국민 소득에 비례하는 법이다. 투기 세력이나 다주택자 역시 한국의 특산품은 아니다. 큰 틀에서 본다면 우리나라의 경우 셋방살이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소유로, 작은 집에서 큰 집으로, 싼 동네에서 비싼 동네로 옮겨가는 부동산 사다리가 그런대로 작동해 왔다. 적어도 노무현 정부 전까지는 말이다.
진보·좌파 정권의 등장과 더불어 우리나라 주택 정책은 이념의 늪에 빠졌다. 모든 사회적 불평등의 기원을 부동산 문제에서 찾는 탓에 주택시장 상위 계층에 대한 증오 프레임과 징벌 테크닉이 속출했고, 결과적으로는 주택 정책 자체가 강남 부자 죽이기로 축소되었다. 집은 ‘사는(買) 것’이 아니라 ‘사는(居) 곳’이라는 목가적 주거 담론이 민심을 현혹했으며, ‘1가구 1주택 실거주’라는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는 경제 원리가 표심을 자극했다. 그사이 정작 이러한 반시장적 주택 정책의 주역들 상당수는 신기득권 ‘강남 좌파’로 슬며시 둔갑했다.
노무현식 부동산 정책 시즌 2의 최대 피해자는 다름 아닌 미래 세대다. 문재인 정부의 주택 정책에 가장 불만을 가진 세대도 30대이고, 최근 주택 구매가 가장 활발한 세대 역시 30대이다.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는) 방식으로 이들이 ‘패닉 바잉’에 나서는 것은 주택 소유의 가치와 효용을 잘 알기 때문이다. 서른아홉의 나이에 서울 은평구 소재 빌라 한 채를 어렵사리 장만한 동기를 어느 평범한 시민은 ‘자유’와 ‘안심’에서 찾았다. 내 집이 생기니 동네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고도 했다(강병진 ‘생애최초주택구입 표류기’). 모르긴 몰라도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변했을 것이다.
‘자기만의 집’은 주체적 개인의 출발로서 인간의 본능이자 권리다. 가산(家産)은 자유민주주의의 물질적 기반일 뿐 아니라 남북 대결에서 체제 우위를 지키는 확실한 담보다. 집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집을 갖게 하는 것보다 더 나은 주택 정책은 없다. 주거 약자를 위한 복지 설계는 적기적소(適期適所)에 ‘굵고 짧게’ 집중하고, 대신 일반 국민들의 주거 자립이 예측 가능한 부동산 사다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반기업·반시장 정책을 거두어 경제 전반의 활력을 늘리는 게 우선이요 상책이다.
지금의 주택 정책은 ‘인디언 기우제’를 닮았다. 23번이 아니라 230번, 2300번쯤 정책이 바뀌면 성과가 날지 모른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면 언젠가 비가 오긴 오는 원리다. 하지만 그때쯤 사람들은 도대체 왜 기우제를 지내는지도 모를 것이다.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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