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작물 상태 분석하고 영양·수분 조절하는 K스마트팜 필리핀 등 新남방 국가로 확대
세계로 수출하는 ‘K-스마트팜’ <3>신한에이텍
입력 2020.09.28 03:00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기업 참여형 IBS(포용적 비즈니스 프로그램) 사업을 통해 신한에이텍이 필리핀 최초로 설치한 한국형 스마트팜에서 현지 농부들이 방울토마토를 재배하고 있다. /신한에이텍 제공
경남 밀양시 초동면에서 양액재배(생육에 필요한 양분을 수용약으로 만들어 재배하는 방식)로 파프리카를 키우는 김청룡(39)씨는 온실보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일이 많다. 컴퓨터 모니터로 1만2000평 온실 내·외부 온도와 내부 습도, 광량과 풍향·풍속 등을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우스만 클릭하면 온실 내 습도와 온도 등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 미리 적절한 값을 설정해 놓으면 검퓨터가 자동으로 온실 지붕을 열어 환기시키거나 차광막을 쳐 햇볕을 차단하는 등 온실 환경을 알아서 유지시킨다. 날마다 다른 일조량과 작물 상태 등을 분석해 영양분과 수분 공급도 제어 설비가 알아서 척척 해낸다.
이 같은 스마트팜 기술로 김씨는 인근 토경 재배 농가와 비교해 1.5~2배 많은 파프리카를 생산하고 있다. 조선업 불황으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지 5년 만에 김씨는 연간 18억~2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부농이 됐다. 김씨는 “물론 농사짓는 사람도 어떻게 해야 작물을 보다 건강하게 많이 수확할 수 있는지 공부하고 그에 맞춰 시스템 설정도 바꿔가며 노력해야 한다”면서도 “스마트팜으로 종일 농사에 매달릴 필요가 없어져 여유가 많아졌고, 과학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일반 토경 재배와 비교해 생산량도 배가 됐다”고 말했다. 스마트팜의 장점을 확인한 김씨는 농림축산식품부의 수출 전문 스마트팜 온실 신축 공모에도 참여해 선정되는 등 스마트팜 전도사가 됐다. 농사를 짓겠다며 회사를 그만둔 김씨를 걱정하던 주변 지인들의 시선도 부러움으로 바뀌었다.
김씨의 파프리카 농장에 도입된 스마트팜 기술은 국내 온실 제어 설비 업체 신한에이텍(주)에서 구축했다. 비료 회사로 시작한 신한에이텍은 국내 시설 원예 농가 대부분이 네덜란드 등 외국산에 의존하는 것을 보고, 시설 원예 설비 국산화를 목표로 온실환경제어시스템 개발에 나섰다. 대부분의 부품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한 신한에이텍은 네덜란드 제품과 비교해 가격은 3분의 1로 낮추면서도 작물 생산성은 80~90%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이 같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내 400여 농장이 신한에이텍의 스마트팜 기술을 받아들였다. 농가들이 더 이상 가격과 성능 면에서 굳이 해외 제품을 사용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다.
한국형 스마트팜 기술을 배우기 위해 지난 2017년 신한에이텍 본사를 찾아온 아프리카 우간다 등 5국 학생들. /신한에이텍 제공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신한에이텍 본사 한편엔 24시간 운영되는 테스트 온실이 있다. 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온실 내부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고, 작물 생장에 적절한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하는 등 스마트팜 기술이 적용돼 있다. 장재욱 신한에이텍 연구개발소장은 “과거엔 농업기술센터 등 기관을 통해 개발한 제품이나 시스템을 실증 의뢰했었지만, 우린 자체 예산을 들여 테스트 온실을 갖췄다”며 “실증 기간을 단축하면서도 극한의 온도 등 다양한 상황을 연출하는 테스트를 진행할 수 있어 제품과 시스템 완성도가 더욱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신한에이텍은 기술을 인정받아 네덜란드 현지 기업에 ODM(OEM과 달리 주문자가 제조 업체에 제품 생산을 위탁해 생산한 제품을 유통·판매하는 방식) 형태로 K스마트팜 기술을 공급하고 있다.
이 같은 한국형 스마트팜 기술은 정부 지원 속에 기후변화 대응과 생산성 향상에 목말라하는 신남방 국가(동남아시아) 등에 확산되고 있다. 신한에이텍도 지난 2017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기업 참여형 IBS(포용적 비즈니스 프로그램) 사업을 통해 필리핀에 진출할 수 있었다. 토마토 시설팜 시범 사업에 참여한 신한에이텍은 필리핀 최초의 한국형 스마트팜을 구축했다. 이곳에서의 결과물은 놀라웠다. 평당 4.4㎏에 불과하던 방울토마토 생산량이 평당 40㎏까지 늘어났다. 성과를 확인한 필리핀 정부는 추가로 K스마트팜 1동을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 기업의 필리핀 수출 확대 기반이 추가로 마련된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도 해당 사업과 연계해 필리핀 현지 환경에 맞는 적정 기술을 활용한 한국형 스마트팜 확산에 나서기로 했다.
신한에이텍의 스마트팜 기술을 적용한 온실에서 파프리카를 재배하는 김청룡씨가 스마트폰과 컴퓨터 모니터로 온실 제어 시스템을 체크하고 있다. /김준호 기자
필리핀 진출을 계기로 신한에이텍은 해외 진출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농기자재 수출기업육성사업에 참여해 영문 홍보 자료와 테스트 베드 추진 등 비용을 지원받아 몽골과 우간다, 베트남 등지로 수출 활로를 넓히고 있다. 작년 농기자재 수출 활성화 국제 워크숍에서는 인도네시아·스리랑카와 13억원 상당의 수출 협약도 맺었다. 동남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진행된 ‘우간다 한국형 농축산 시범단지’ 사업에도 참여해 아프리카까지 한국형 스마트팜의 저변을 넓히고 있다. 장재욱 소장은 “자급자족 형태 수준에 머물던 우간다 농가들도 1년 연중 안정적인 작물 재배와 생산으로 상업농 수준까지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계기가 됐다”며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필리핀을 비롯해 우간다까지 K스마트팜 확산도 속도를 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기후변화 대응과 농업 생산성 향상을 위해 신남방·신북방 국가 중심으로 K스마트팜 관련 공적원조(ODA) 수요가 늘어나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작년 한·메콩 정상회의에서도 스마트팜 등 농업 분야 협력이 이슈였다. 각 나라마다 기술·환경 등 제각각인 제반 여건을 고려해 적정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팜 구축이 과제다.
이상만 농림축산식품부 국제협력국장은 “메콩강 유역의 신남방 국가에 우선적으로 온실, 기자재, 데이터 인력 등이 결합된 고부가가치 스마트팜 공적 원조 보급을 확산시켜 나갈 계획이다”라며 “이 국가들에 스마트 농업 노하우를 전파하고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해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기반을 마련하는 등 포스트 코로나 시대 신성장 동력을 찾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준호 기자 편집국 사회부 부산취재본부
편집국 지방취재본부에서 경남 18개 시·군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편집국 지방취재본부에서 경남 18개 시·군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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