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민태기의 사이언스토리] 챌린저호 비극을 수학으로 분석한 경제학자의 메시지

최만섭 2020. 9. 25. 05:36

오피니언

[민태기의 사이언스토리] 챌린저호 비극을 수학으로 분석한 경제학자의 메시지

첨단 우주왕복선이 작은 결함 하나로 폭발 참사 수학으로 事故 설명한 크레이머, 노벨경제학상 수상
우수 집단도 능력 부족자 한 명만 있어도 산출물 급감 하지만 인력 재배치로 집단 결과물 획기적 개선 가능
“개인 능력과 집단 생산성은 리더의 전략으로 달라진다” 챌린저호 보며 ‘오링이론’ 탄생시킨 크레이머의 메시지

민태기 연구소장

입력 2020.09.25 03:00

 

                             민태기 에스엔에이치 연구소장·공학박사

1986년 1월 28일, 승무원 7명이 탑승한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Challenger)호가 발사 73초 만에 폭발하는 비극이 발생한다. 1969년 인간을 달에 착륙시킨 아폴로 계획에 이어 1981년부터 이미 수십 차례 발사에 성공한 우주왕복선은 인류 최고의 과학 기술로 평가받고 있었다. 게다가 당시 챌린저호에는 우주에서 어린이들에게 과학 강연을 하려던 현직 교사가 탑승해 어린 학생들도 발사 장면을 생중계로 보고 있었기에 충격은 엄청났다. 미국 정부는 즉시 조사 위원회를 구성했다.

 

챌린저호 폭발 분석이 경제 이론으로 탄생

조사 위원이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먼(Richard Feynman)은 청문회에서 놀라운 발표를 한다. ‘오링(O-ring)’이라는 불과 6.4㎜ 두께의 작은 부품이 사고 원인이라고 지목한 것이다. 금속과 금속 사이를 밀폐하는 오링은 부드러운 고무로 만든다. 하지만 온도가 낮아지면 고무가 딱딱해져 밀폐 효과가 없어진다. 발사 장소는 1년 내내 날씨가 따뜻한 플로리다였기에 평소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이상 한파로 하필 발사 당일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오링이 새면서 참사로 이어진 것.

 

어떻게 작은 결함 하나로 첨단 과학이 집약된 거대한 우주왕복선이 폭발했는지 사람들은 믿을 수 없었고, 이해할 수 없었다. 이때 경제학자 마이클 크레이머(Michael Kremer) 교수는 사고의 본질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그가 손에 쥔 도구는 수학이었다. 챌린저호 폭발을 설명하기 위해 시작한 크레이머의 수학적 분석은 1993년 ‘오링이론(O-ring theory)’이라는 경제 이론으로 탄생하고, 그는 이 업적으로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일러스트=김하경

크레이머는 뛰어난 인재들이 만든 우주왕복선과 같은 최고의 제품이라도 단 하나의 결함이 재앙이 된다는 것을 수학으로 표현하려고 시도했다. 이를 위해서 노동생산성은 개별 노동력의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라는 생각에 이른다. 만약 더하기라면 우수한 집단에 다소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이 있어도, 심지어 0의 능력이 있어도 큰 영향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곱하기라면 다르다. 0이 곱해지는 순간, 산출물은 0이 되고 만다. 이처럼 챌린저호 사고는 ‘곱하기’였기에 일어난 일이다.

불평등 해결 실마리 찾은 ‘오링이론’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곱하기’라는 간단한 수학을 빈부 격차 문제로 확장했다. 생산성이 높은 노동을 A라고 하고, 낮은 노동을 B라고 할 때, (A-B)의 제곱은 언제나 양수이므로, AA+BB > AB+AB가 항상 성립한다. A가 10이라고 하고 B를 5라고 하면, 100+25 > 50+50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부등식은 어떤 수를 대입해도 성립한다. 단순한 수학이라도 의미는 심오하다. 흔히 높은 생산성과 낮은 생산성을 섞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능력별로 나누는 것이 이익이다.

 

 

이러한 능력에 따른 집단 간 자연스러운 분리는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고부가가치의 집단일수록 우수한 인력이 몰리고, 그렇지 못한 집단은 인력을 구하기 힘들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우수한 인력을 얻지 못한 집단은 하는 수 없이 단순한 업무를 하게 된다. 뛰어난 셰프들일수록 더 좋은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기고, 셰프조차 구할 수 없는 식당은 김밥을 만들 수밖에 없다. 맥도날드에서 훌륭한 셰프를 고용한다고 이익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박리다매라는 좋은 전략이 있지만, 고부가가치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이 상황이 지속하면 생산성이 높은 집단과 낮은 집단 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여기까지만 보면 오링이론이 마치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크레이머는 해결의 실마리 역시 ‘곱하기’에서 찾았다. 집단의 결과물을 구성하는 여러 단계의 노동은 동시에 곱해지는 것이 아니라 대개 순서대로 차례로 곱해진다. 따라서 뛰어난 사람일수록, 실수가 적은 사람일수록 작업 순서의 뒤쪽에 배치해야 한다. 앞 단계의 실수는 만회할 수 있지만, 마지막 단계의 실수는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미용실에서는 원장님이 마무리를 맡고, 야구의 마무리는 가장 실수가 적은 투수의 몫이다. 인력 재배치만으로도 이익은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개인의 능력은 타고난 것이 아니다

크레이머가 더욱 강조한 것은 개인의 능력은 타고나거나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적절한 동기부여가 없다면 개인은 굳이 노력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이것이 반복해서 곱해지면 고부가가치의 집단이라도 구성원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반면에 낮은 생산성의 집단에서 강력한 인센티브는 구성원들이 스스로 능력 향상에 나서는 선순환을 만든다. 이처럼 정책에 따라 집단은 전혀 다른 미래를 맞이한다. 이것이 오링이론의 핵심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날로 심해지는 소득 격차일 것이다. 대기업에 가려는 청년들은 구직난에 허덕이고, 중소기업은 구인난에 절망한다. 오링이론이 다 들어맞지는 않겠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단순하게 보이는 김밥이라도 부가가치를 높여야 하고, 최대한 이익을 얻어야 좋은 인재를 뽑을 수 있다. 좋은 인재로 키워봤자 결국 대기업 간다고 한탄할 필요는 없다. 손흥민과 류현진은 어떤 면에서 국내 선수들에게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일 수 있다. 메시를 데려온다고 모든 팀이 FC바르셀로나가 되는 것도 아니다. 개인의 능력과 집단의 생산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리더의 전략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진다는 것, 이것이 챌린저호의 비극을 바라보며 수학을 전개한 경제학자 크레이머의 메시지이다.

 

 

민태기 연구소장 에스엔에이치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