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독자가 사랑한 우리말] [29] 뜨덕지기 /h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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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제도

[독자가 사랑한 우리말] [29] 뜨덕지기

by 최만섭 2020.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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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사랑한 우리말] [29] 뜨덕지기

[조선일보 100년 기획 - 말모이 100년,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

안황임·61세·경기 부천시

입력 2020.09.16 03:00

 

 

 

아버지 산소에 다녀왔다. 오빠가 나쁜 병에 걸려 수술을 한다니 별안간 아버지가 생각났다. 무덤 앞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끔찍이 여겼으니 하늘나라에서라도 도와달라고 기도하고 싶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황해도 사람이다. 1·4후퇴 때 젊은 색시와 어린 딸을 두고, ‘곧 다시 오겠지’ 하며 남으로 내려오셨단다. 몇 년 뒤 인천에서 자리 잡으며 결혼을 하셨다. 생전에 유독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셔서 수제비, 국수 등을 즐겨 드셨다. 아버지 피부가 하얘서 어릴 땐 하얀 밀가루를 많이 드셔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는 젊었을 때부터 위가 안 좋아 고생하시다 결국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 하면 밀가루 음식 중에서도 ‘뜨덕지기’가 떠오른다. 반찬이 궁하거나 입맛이 없으실 땐 엄마한테 “어이! 뜨덕지기 한번 해봐” 하곤 하셨다. 아내를 ‘어이’라고 부르는 살갑지 않은 그 시대의 남편이었지만 여덟 살 어린 아내를 속 깊은 정으로 사랑하신 것 같다. 매년 조기 철에 조기 한 짝씩 사다가 다듬어서 소금에 절여 말리시던 어린 날의 기억은 아직도 새록새록하다.

 

 

뜨덕지기’는 수제비의 다른 말이다. 밀가루 반죽을 뜨덕뜨덕 뜯어 넣어서 그런 말을 쓰신 거 같은데 다른 어디에서도 들은 바가 없으니 황해도 사투리거나 아버지 고향에서의 말이겠거니 짐작해 본다. 돌아가신 지 20년이 넘었지만 작은 소반 위의 뜨덕지기를 앞에 두고 맛있게 드시던 아버지가 가끔 생각난다. 항상 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시다 명절 때마다 슬그머니 북쪽 밤하늘을 쳐다보시던 아버지는, 훨훨 날아서 지금쯤 두고 온 가족과 같이 계시겠지 하고 위안을 해본다.

그래도 아버지 보고 싶어요. 우리 엄마와 아픈 오빠를 보살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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