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

[이영완의 사이언스 카페] '어린 왕자'에도 나왔던 바오밥나무의 돌연사

최만섭 2018. 6. 14. 10:12

[이영완의 사이언스 카페] '어린 왕자'에도 나왔던 바오밥나무의 돌연사

입력 2018.06.14 03:15

수천 년 살아온 바오밥나무… 최근 10여 년 사이 잇따라 쓰러져
지구온난화가 부른 가뭄 탓에 마다가스카르에서도 멸종 위기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기원전 509년 로마는 국가 창건 때부터 240년 넘게 이어져 온 왕정을 폐지하고 첫 공화정을 수립했다. 같은 시기 아프리카 남부 짐바브웨의 초원에서는 코끼리 똥에서 씨앗 하나가 싹을 틔웠다. 그로부터 2500년 동안 이 나무는 인류 역사의 흥망성쇠에 불구하고 묵묵히 제자리를 지켰다. 바로 바오밥나무 '판케'이다. 이 바오밥은 15m가 넘는 큰 키에 마치 뿌리가 하늘을 향한 듯 나무 끝에만 가지가 나 있는 특이한 생김새로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의 상징이 됐다.

숱한 전쟁과 자연재해에도 끄떡없던 나무가 2010년 갑자기 쓰러졌다. '판케'가 끝이 아니었다. 지난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1000년 된 '선랜드' 바오밥이 죽었으며, 2016년에는 보츠와나에서 1400년 된 '채프먼' 바오밥이 쓰러졌다. 키 30.2m, 줄기 둘레 35.1m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바오밥인 나미비아의 '홀붐'도 2012년 줄기 상당 부분이 무너져 내렸다.


세상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속씨식물인 바오밥나무가 갑자기 사라지고 있다. 미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 루마니아 과학자들은 지난 11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식물'에 발표한 논문에서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바오밥나무 13그루 중 9그루, 가장 큰 바오밥 6그루 중 5그루가 최근 12년 동안 쓰러졌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아프리카에 있는 바오밥나무 60여 그루를 조사했다. 바오밥의 돌연사는 인간에 의한 지구온난화가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아프리카 남부에 줄기가 검게 변하는 곰팡이병이 돌았지만 쓰러진 바오밥나무에는 곰팡이 흔적이 없었다. 이번 논문의 공동 저자인 미국 우즈홀 해양연구소의 칼 폰 리덴 박사는 "이번 세기 초반에 갑자기 바오밥들이 죽고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광산의 카나리아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가스 누출을 먼저 감지하고 죽는 카나리아처럼 온난화의 파국을 인류에게 먼저 알리고 바오밥이 죽었다는 것이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바오밥은 우기(雨期)와 건기(乾期)가 뚜렷한 초원지대에 산다. 아프리카에 2종이 있고, 마다가스카르에 6종, 호주에 1종이 있다. 바오밥은 5~7개월씩 지속되는 건기에 대비해 몸집을 키워 물 저장량을 늘렸다. 하지만 온난화로 기온이 높아지고 가뭄이 지속되자 거대한 몸집을 유지할 만큼 물을 흡수하지 못했다. 이번 논문의 제1 저자인 루마니아 바베스 볼라야대의 애드리안 파트루트 교수는 "쓰러진 바오밥은 물의 양이 평소 건강할 때의 절반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바오밥의 위기는 앞서 마다가스카르에서도 포착됐다. 프랑스 과학자들이 2013년 마다가스카르에 사는 바오밥 두 종의 서식지가 온난화로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인공위성 사진에서 단 99그루만 남은 것으로 확인된 한 종은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지속되면 2080년에는 서식지가 70%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다른 종은 아직 수가 많지만 역시 기후변화로 서식지가 급감하면서 2080년에는 멸종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바오밥은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책에서 어린 왕자는 바오밥나무가 뿌리로 별에 구멍을 뚫어 버리는 나쁜 식물이라고 설명하며 보는 대로 바로 뽑아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바오밥이 사라지면 사람과 동물에게도 큰 손해가 된다.

바오밥은 미국 작가 셸 실버스타인의 그림책 제목처럼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다. 바오밥에는 박쥐와 벌, 새들이 깃들어 살며, 코끼리는 수분이 많은 바오밥 껍질을 벗겨 먹고 건기를 견딘다. 사람들은 바오밥 열매로 주스나 빵을 만들어 먹었다. 나뭇잎을 끓인 물은 약으로 쓰였다. 껍질을 벗겨 섬유를 뽑아내 밧줄이나 바구니 등 생활용품도 만들었다. 나무 한가운데 커다란 빈 공간은 사람들이 곡식 창고나 감옥으로 쓰기도 했다. 보츠와나의 채프먼 바오밥은 탐험가들의 편지를 보관하던 최초의 우체국 역할도 맡았다.

마다가스카르에서는 바오밥을 현지어로 '레날라'라고 부른다고 한다. '숲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이는 영화 '아바타'에서 판도라 행성의 나비족들이 사는 '홈트리(home tree)' 나무의 여신 에이와를 연상
시킨다. 영화에서 지구인의 탐욕으로 홈트리가 파괴되는 모습도 온난화로 쓰러진 바오밥과 흡사하다.

아프리카 한 부족은 바오밥나무가 죽으면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고 부르며 생전 가뭄에서 인간을 보호해준 데 감사드리는 장례식을 치러준다고 한다. 이제라도 인간의 생명을 지켰지만 인간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린 모든 자연의 어머니들에게 참회의 절을 올려야 하지 않을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13/20180613028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