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

[최보식이 만난 사람] "古木은 꽃을 피우지만… 사람은 나이 들어도 '좋은 어른' 되기 어려워"

최만섭 2017. 4. 10. 06:46

[최보식이 만난 사람] "古木은 꽃을 피우지만… 사람은 나이 들어도 '좋은 어른' 되기 어려워"

입력 : 2017.04.10 03:03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일본 사쿠라인 왕벚나무, 한라산에서 野生 자생지 발견
일본은 아직 발견 못 해… 韓日 간 기원 두고 논쟁"

"암꽃·수꽃 따로 있는 개나리, 요즘에는 줄기 잘라 심어
아버지와 똑같은 복제품들 무수히 많이 만들어진 것"

왜 이맘때면 꽃들은 일제히 피어나 소리 없는 외침으로 우리를 불러 세우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탄성을 터뜨리게 하는가, 이런 봄날의 감상(感想)으로 이유미(55) 국립수목원장을 만났다. 그녀가 1995년 쓴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나무 백 가지'는 지금까지 스테디셀러다.

"지금 피어나는 꽃들은 작년에 이미 준비된 겁니다. 나무는 가지에 꽃눈을 달고 한겨울을 견뎌냅니다. 꽃눈에는 꽃의 모든 형태가 압축돼 있습니다. 봄이 오면 이 꽃눈의 예정된 꽃들이 터져 나오는 것이지요."

이유미 국립수목원장은“무궁화는 영어로‘로즈 오브 샤론’이지만 장미과가 아니라 아욱과”라고 말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은“무궁화는 영어로‘로즈 오브 샤론’이지만 장미과가 아니라 아욱과”라고 말했다. /최보식 기자
―벚꽃 세상입니다. 한때 일본풍이라고 했지만 이제는 뭐라 해도 봄을 대표하는 꽃이 됐습니다.

"벚나무 종류는 올벚나무, 개벚나무, 털벚나무 등 10여 종이 됩니다. 벚꽃 축제에 심어진 종은 대부분 왕벚나무입니다. 일시에 온 도시를 덮을 만큼 그렇게 화사하고 풍성한 봄꽃나무를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본종이라고 논란이 돼 왔습니다. 창경궁에 심어진 왕벚나무는 다 베어냈지요. 진해 군항제의 왕벚나무도 한때 그런 위기를 맞았습니다."

―왕벚나무의 자생지가 제주도 한라산이라는 조사 연구가 나와 일단락된 걸로 압니다.

"일본에서는 아직 왕벚나무의 자생지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한 오래된 조경농장에서 재배돼 온 왕벚나무가 1901년 학계에 보고된 것이지요. 이 왕벚나무를 증식 보급해왔고,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에도 많이 옮겨 심었지요. 하지만 그 뒤 일본 학자에 의해 한라산에서 야생 왕벚나무 자생지가 처음 발견됐습니다. 이때부터 왕벚나무의 한·일(韓日) 기원을 두고 논쟁이 불붙었습니다. 최근에는 유전자분석까지 하고 있습니다."

―유전자분석을 한다는 것은?

"일본에서 보급된 왕벚나무와 한라산에서 자생하는 왕벚나무 간 형태적 특성과 핏줄 연관성을 살피는 겁니다. 같은 종(種)이라는 연구가 다수입니다. 하지만 유전적으로는 약간의 차이점도 있습니다. 일본 왕벚나무는 계속 인위적으로 육종·증식돼 왔기 때문입니다. 좀 더 정밀한 계통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벚꽃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백목련은 전등(電燈)처럼 피지요. 관찰해보면 그 꽃봉오리가 북쪽을 향하는 것이 많더군요.

"햇볕 때문입니다. 봄 햇살이 잘 내리쬐는 남쪽 방향의 꽃눈이 더욱 빨리 자라 벌어지게 되면서 북쪽을 향해 굽은 겁니다. 옛사람들은 이 백목련을 '북향화'라고 부르기도 하고, 임금님이 계신 북쪽을 바라보는 충정의 꽃이라고도 했습니다."

―매화는 벚꽃보다 일찍 화사하게 피는데, 봄꽃나무로 분류하지 않는 것 같더군요.

"한반도 중부에서 보면 매화는 봄에 핍니다. 벚꽃보다 먼저 봄소식을 알리지요. 하지만 기온이 영하로 안 내려가는 남도의 섬이나, 설중매(雪中梅) 같은 품종은 겨울에도 꽃이 핍니다. 이 때문에 매화는 봄꽃이고 겨울꽃이 되는 이중성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이맘때면 산에 진달래가 지천이었습니다. 진달래가 봄꽃을 대표했는데, 지금은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이상한 말이지만 숲이 좋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소나무 아래에 어우러진 진달래가 전형적인 우리 숲의 모습이었지요. 이제는 참나무를 비롯해 훨씬 다양한 풀과 나무들에게 자리를 내주게 된 겁니다."

―숲 생태계가 좋아져 진달래가 사라진다는 뜻입니까?

"예전에 나무 땔감을 구하고 낙엽까지 모두 긁어가면서 국내산 토양은 산성화됐습니다. 이런 땅에서 잘 자랄 수 있는 나무들은 극히 제한적이었지요. 산성에 강한 진달래가 경쟁자 없이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소나무 숲에서 내뿜는 방어 물질이나 햇볕에 대한 적응력이 높으니까요. 하지만 숲이 우거지고 그늘이 생겨나면서 진달래에게는 불리한 환경이 된 겁니다."

―요즘 개나리꽃은 열매를 안 맺는다는 말이 있더군요. 열매를 안 맺는 꽃이 있을 수 있나요?

"개나리는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습니다. 수꽃의 경우 수술은 발달해 있지만 암술이 아주 작아 거의 제 기능을 못 합니다. 결국 암꽃·수꽃끼리 결합해야 하는데, 우리 주변에는 대부분 수꽃입니다. 요즘 개나리들은 대부분 줄기를 잘라 심은 겁니다. 아버지와 똑같은 복제품이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이 만들어진 거죠. 열매를 맺을 기회가 적고 구태여 맺을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꽃 자체를 안 피우는 식물도 있습니까?

"고등식물 중에는 고사리·고비 같은 양치식물이 꽃 없이 포자로 번식합니다."

―버섯도 그런 종류이지요?

"버섯을 식물로 잘못 알고 있는 이가 많은데, 버섯은 미생물로 분류됩니다. 버섯의 균사체는 생태계 안에서 식물을 분해하는 역할을 하지요."

―서울대 농대 산림자원과에 입학해 식물 분류로 박사 학위를 받았지요?

"박사과정에 올라가니 지도교수님이 '꽃 박사를 하는 게 어때?'라고 권했습니다. 제가 학과에서 유일한 여학생이었으니까요. 꽃 박사라는 게 식물 분류였지요. 한 식물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분화해서 현재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계통을 연구하는 학문이지요. 식물도감과 현장 답사를 통해 식물 식별을 하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같은 식물인데 여러 이름이 혼용되는 경우도 있지요?

"권위 있는 식물도감 3권에 실린 식물명을 비교해본 적 있는데 모두 일치한 경우는 불과 49%였습니다. '음나무'와 '엄나무'도 그런 경우입니다. 플라타너스는 우리말 이름이 '버즘나무'인데, 나무껍질이 피부에 버즘이 핀 것처럼 얼룩얼룩하다고 해서 붙여진 거죠. 북한에서는 열매의 특징을 따서 '방울나무'라고 부릅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오른쪽)
―'복주머니난'과 '개불알꽃'은 어느 쪽으로 이름을 통일할지 논쟁이 붙었지요?

"식물도감에도 저마다 다르고 학자들끼리도 팽팽하게 맞붙었습니다. 최근에 국가표준식물목록위원회에서 '복주머니난'을 추천명으로 하기로 결정 내렸습니다."

―예쁜 꽃에 '며느리밑씻개'처럼 저속한 이름이 종종 있지요?

"부르기 거북한 이름, 학술적인 체계와 맞지 않은 이름, 맞춤법에 어긋나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름을 바꾸는 것은 혼란을 줍니다. 논란이 아주 많은 이름인 경우에만 심의합니다."

―저는 꽃 이름을 듣고도 돌아서면 헷갈립니다.

"다 유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살펴보면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또 꽃이나 열매와 같은 생식기관의 구조가 같은 식물의 집안을 먼저 살펴보는 게 중요합니다. 저 꽃은 무슨 집안인데 어떻게 다르다는 식으로요. 가령 붓꽃은 꽃봉오리가 먹을 찍은 붓 모양이어서 붓꽃입니다. 붓꽃 집안에는 많은 종류가 있어 혼동되지만, 꽃잎이 노란색이면 금붓꽃, 노란 무늬가 있으면 노란무늬붓꽃이 되지요."

―집안이라면?

"가령 소나무, 리기다소나무 등은 생식적으로 독립된 하나의 종(種)입니다. 이들을 모두 포함하는 게 소나무속(屬)이지요. 소나무속, 전나무속, 가문비나무속 등이 모이면 소나뭇과(科)라는 좀 더 큰 집안 단위가 됩니다. 이런 분류 기준은 꽃이나 열매 같은 생식기관의 구조에 좌우됩니다. 완두콩은 풀이고 덩굴이지만, 키가 큰 나무인 아카시나무와 같은 콩과입니다. 열매를 보면 콩꼬투리가 닮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칡, 자귀나무, 회화나무도 모두 콩과이지요."

―봄에 피는 꽃나무 중에는 산수유와 생강나무의 구분이 쉽지 않지요.

"산수유꽃은 1㎝ 길이의 일정한 꽃자루 위에 노란 공처럼 달렸고, 생강나무 꽃은 자루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생강나무는 주로 산에서 자랍니다. 서로 꽃은 비슷해도 전혀 다른 집안입니다."

―이번 대선을 '장미 대선'으로 부르면, 마치 꽃에 정치 물을 들이는 것 같기도 하군요.

"장미는 5월의 대표적인 꽃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장미들은 야생의 꽃이 아니라 다양한 색과 모습, 향기로 개량된 원예종입니다. 야생에서 자라는 찔레, 해당화, 인가목 등이 장미속 식물입니다. 이런 식물로 장미를 육종할 수 있는 거죠. 어떤 분들은 '벚꽃과 장미는 그렇게 사랑하면서 무궁화는 너무 홀대한다'고들 말합니다."

―어렸을 때만 해도 사립문 양쪽에 무궁화를 심곤 했지요. 무궁화도 장미과(科)인데, 벌레가 많이 끼거나 금세 시들어 장미꽃만큼 화려한 것 같지 않습니다.

"무궁화의 영어명이 '로즈 오브 샤론(rose of sharon)'이라 장미과로 오인하는데, 무궁화는 아욱과입니다. 장미과는 많은 수술과 암술이 꽃받침통 위에 모여 달리지만, 무궁화는 쭉 뻗은 암술대에 수술이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장미를 키우는 정성의 10분의 1만 들여도 우아하고 기품 있게 키울 수 있다고 봅니다. 일제가 의도적으로 무궁화를 비하했다는 것이지요. 재작년 광복 70년을 맞이해 국립수목원은 '우리 식물주권 바로잡기' 사업을 했습니다."

―'식물주권'이라는 게 있습니까?

"조어입니다만… 소나무의 영어 이름은 '재패니스 레드 파인(Japanese red pine)'입니다. '코리안 레드 파인'이 되지 못한 것은 일본을 통해 처음 소개됐기 때문이지요. 울릉도에만 자생하는 섬초롱꽃이 '다케시마 초롱꽃'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어 이름을 바로잡으려는 작업입니다."

―요즘 와서 '자생종' '외래종' 하면서 식물의 핏줄 순수성을 따지는 것은 바람직한가요? 명백히 '우리 식물'이라고 여겨지는 것도 과거 어느 시점에는 바깥에서 들어왔을 수 있습니다.

"너무 따지는 것도 문제이지만 알 것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자생식물은 4천종이 되는데 과거에는 그런 개념이 없었습니다. 들판의 이름 없는 풀 정도로 여겼지요. '나고야 의정서(생물자원 활용의 이익 공유 협약)'가 채택되면서 이런 자생종은 국가 자원이 됩니다. 식용·약용은 물론이고 관상용도 귀중한 자원으로서의 가치가 있지요. 세계 조경 시장에서 많이 유통되는 '미스킴 라일락'은 북한산 백운대에 들고 나간 털개회나무에서 육종한 것입니다."

―이맘때 꽃을 보고 있으면 어떤 상념이 듭니까?

"제가 오십 중반이 되니까… 사람은 나이 들어도 좋은 어른이 되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각박하고 고집스러워지죠. 하지만 오래된 고목(古木)에서는 봄이면 아주 여린 새순과 아름다운 꽃이 나와요."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4/09/201704090193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