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

[김민철의 꽃이야기] 길상사에 찾아온 서울의 봄

최만섭 2017. 3. 9. 08:21

[김민철의 꽃이야기] 길상사에 찾아온 서울의 봄

입력 : 2017.03.09 03:06

영춘화·봄맞이·보춘화… 봄을 알리는 꽃들 피기 시작
개나리 비슷한 迎春花, 꽃잎 6갈래
봄맞이는 긴 줄기에 자잘한 흰 꽃
남녘에선 報春花도 꽃대 올려
봄꽃들의 화려한 카덴차 기대

김민철 사회정책부장
김민철 사회정책부장
법정스님의 저서·유품을 전시한 서울 길상사의 진영각 가는 길 담벼락엔 노란색 꽃이 몇 개씩 피기 시작했다.

"어머, 개나리가 피었나봐. 진짜 봄인 모양이야. 뉴스 보니까 어디 매화가 피었다고 하더니…."

지나가는 아가씨가 친구에게 말하며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개나리같이 생겼네. 어, 좀 다른데…."

다른 일행이 이렇게 얘기하며 지나갔다. 잠시 담벼락 옆에 서 있으니 이런 대화를 여럿 들을 수 있었다. 꽃은 영춘화(迎春花)였다. 일찍 피어 봄을 맞이하는 꽃이라는 뜻이다. 아직 몇 송이씩밖에 피지 않았지만 붉은색 꽃눈은 다글다글 했다. 이번 주말이나 다음 주말쯤 다 피면 볼만할 것 같았다. 그 옆에 있는 진짜 개나리는 아직 꽃싹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 주말 길상사엔 봄기운이 완연했다. 따스한 봄볕을 즐기려는 연인, 가족들이 많았다. 적묵당 앞 화단엔 복수초가 만개했다. 덜 벌어진 노란 꽃은 황금잔 같다. 실물도 예쁘지만 사진으로 담으면 더 예쁜 꽃이 복수초다. 진영각 옆 화단엔 자잘한 별꽃이 다 피었고, 한창 꽃대를 올리는 수선화는 금방이라도 노란 꽃이 벌어질 듯하다. 설법전 옆 화단에선 냉이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김민철의 꽃이야기] 길상사에 찾아온 서울의 봄
/이철원 기자
겨울이 춥고 길수록 더 간절하게 봄을 기다리기 마련이다. 필자가 꽃을 보면서 '이제 봄이 왔구나' 생각하는 꽃은 영춘화다. 출근길 지하철역 근처 담장에 영춘화를 몇 그루 심어 놓았는데, 해마다 2월 말부터 꽃싹을 유심히 보며 다닌다. 3월 초 영춘화가 한두 송이 피기 시작하면 '이제 목도리를 놓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영춘화라는 이름 때문에 더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복수초와 변산바람꽃, 노루귀도 이르면 2월 중순부터 피지만 아무래도 산에 가야 만날 수 있는 꽃이니 경우가 좀 다르다.

영춘화는 개나리 비슷하게 노란 꽃이 피고 잎보다 먼저 꽃이 피는 것도 똑같다. 자라는 모양이나 크기가 비슷해 멀리서 보면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닮았다. 하지만 개나리보다 보름쯤 먼저 피고, 꽃잎이 대개 6개로 갈라지는 점이 다르다. 개나리는 4개로 갈라지는 꽃이다. 어린 가지가 개나리는 갈색인데 영춘화는 녹색인 점도 다르다. 개나리는 우리 토종인 데 비해 영춘화는 중국 원산으로 관상용으로 들여와 심은 것이다. 길상사에서 내려오면서 보니 주택가 담장에도 영춘화를 심어놓은 곳이 적지 않았다.

영춘화처럼 이름 자체가 봄을 맞거나 알리는 의미를 갖고 있는 꽃들이 몇 개 더 있다. 봄맞이와 보춘화(춘란)가 대표적이다. 요즘 시골 논두렁, 길가에 가면 긴 꽃줄기 끝에 자잘한 하얀 꽃 무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꽃은 이름 자체가 봄맞이다. 앵초과의 두해살이풀로, 꽃줄기 끝에 4~10송이가량 꽃이 달린다. 초봄 고향집에서 몇 발짝만 나가면 봄맞이 무리를 만날 수 있었다. 봄바람에 쓰러질 듯 안쓰럽게 흔들리지만 바람이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일어서는 꽃이다. 흔한 꽃이라 사진을 보면 "어, 이거 나도 보았는데…"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서울 화단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꽃잎은 5개로 갈라지는데, 그냥 흰 꽃이면 심심해 보여서인지 꽃 가운데 노란색 동그라미로 멋을 냈다. 줄기와 꽃받침 등에 미세한 털이 나 있다. 꽃샘추위에 대비한 장비일 것이다.

요즘 남쪽 산에 가면 가는 잎 사이에서 꽃대가 올라와 한 송이씩 핀 꽃을 볼 수 있다. 흔히 춘란(春蘭)이라고 부르는 보춘화다. 사군자 그림에 나오는 난과 비슷하다. 언뜻 뿌리에서 모여 나는 잎만 보면 도시 화단에 흔한 맥문동 비슷하게 생겼다. 꽃 이름 보춘화(報春花)는 봄을 알리는 꽃이라는 뜻이다. 영춘화, 봄맞이와 사실상 같은 뜻이다. 보춘화는 꽃대 한 개에 하나의 꽃을 피우지만 겨울 제주도에서 피는 한란은 꽃대 하나에 여러 송이 달리는 점이 다르다. 특이하게도 보춘화는 잎이 온전한 개체를 찾기가 쉽지 않다. 개체마다 뜯겨나간 잎이 한두 개 있기 때문이다. 겨우내 굶주린 고라니 같은 산짐승들이 뜯어 먹은 흔적이다.

봄꽃들은 일주일에서 열흘 간격으로 절정을 보이는 꽃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매화가 피고 나면 산수유, 산수유가 피고 나면 백목련, 조팝나무꽃이 만개하는 식이다. 식물 어디에 이처럼 정교한 생체시계가 있어서 제각각 때를 맞추어 피는지 참 신기할 따름이다. 마치 봄꽃들이 차례로 카덴차(연주에서 솔로 악기가 기교적인 음을 화려하게 뽐내는 부분)를 연주하는 것 같다. 봄맞이꽃들이 서곡을 연주했으니 이제 곧 봄꽃들의 화려한 카덴차도 시작이다.

영춘화

봄맞이

보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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