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안의 시선] 논개, 추다르크 그리고 추크나이트
[중앙일보] 입력 2020.12.04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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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안 논설위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롤 모델은 논개다. 스스로 공개한 사실이다. 2018년 6월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선거 지원차 진주를 방문해 꺼낸 얘기다. “나라를 구하고자 몸을 던진 논개정신, 평화를 지켜야 할 이때 우리는 논개정신이 생각난다. ‘추다르크 추미애’의 닮고 싶은 정신이 바로 논개정신이다.”
‘추다르크=논개’ 강조한 추미애
윤석열 띄우는 ‘추크나이트’ 별명
떨고 있는 청와대에 할말은 해야
이 말에 솔깃했을까. 여권에서 논개정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잇따른다. “추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둘 다 퇴진하는 것이 국가 운영에 더 이상 피해를 안 줄 것”이라는 이상민 의원의 말이 대표적이다. 정말로 추 장관이 윤 총장을 붙들고 절벽에서 뛰어내린다면 청와대는 공적비라도 세워야 할 판이다.
추 장관은 윤 총장을 상대로 연쇄 수사지휘, 인사권 무력화, 직무집행 정지 등 모욕적인 조치를 쏟아냈지만 일찌감치 ‘식물’을 자처한 윤 총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법원이 윤 총장 손을 들어주자 꿈틀꿈틀 다시 ‘동물’로 살아나 월성 원전 1호기 관련 공무원을 구속하겠다고 나섰다. 청와대의 모골이 송연할 거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윤 총장을 임명하던 순간 이런 날이 오리라고 상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아주 없진 않았다. 검찰 내부를 잘 아는 당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윤석열을 총장에 앉히면 안된다고 요로(要路)에 전달했지만 먹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우리 윤 총장”하며 활짝 웃을 때 다들 ‘윤 총장’에 방점이 찍힌 걸로 생각했다. 악센트가 ‘우리’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샅샅이 뒤져 90살까지 감옥에 살게 한 윤석열은 ‘우리 윤 총장’이지만, 조국 전 장관을 탈탈 턴 윤석열은 전혀 다른 존재였다.
청와대가 윤 총장 축출의 해결사로 영입한 추 장관은 확실히 달랐다. ‘3보 1배’가 트레이드 마크인 그는 괴이한 포석을 전개하며 세 번 움직일 때마다 한번 까무러치게 하는 ‘3보 1헉!’의 행보를 보여왔다.
이런 추 장관을 두고 대학 커뮤니티에선 ‘추크나이트’ 논쟁이 한창이다. 실은 추 장관이 친 문재인 세력을 약화시키며 윤 총장을 띄우려고 영화 ‘다크나이트’의 배트맨처럼 악역을 자임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그의 난수표 같은 과거 행적을 근거로 제시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진 사건부터 당 대표 시절 네이버 댓글 의혹을 고발해 김경수 지사의 1·2심 당선무효형 결과를 도출한 사례 등이다. 마침 추 장관은 3일 페이스북에 노 전 대통령 사진을 올려 주목받았다. 이를 두고 “본인을 내칠 경우 가만있지 않겠다는 압박”(김근식 경남대 교수)이라는 해석이 따랐다.
윤 총장 장모를 기소했던 박순철 전 서울남부지검장을 비롯해 고기영 법무차관, 김욱준 서울중앙지검 1차장 등 그나마 청와대 구상에 힘을 보탤 검사들에게 매우 난처한 상황을 선사해 줄사표를 쓰게 한 것도 윤 총장에게 힘을 보탠 셈이다. 대조적으로 윤 총장의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은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조용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던 정진웅 차장검사를 마이크 타이슨처럼 변신시켜 한 검사장을 습격했다. 그러나 한 검사장은 잘 피했고 정 차장검사의 병실 사진과 독직폭행 재판만 남았다.
“어~어~” 하는 사이 윤 총장은 대선후보 선호도 1위(24.5%, 알앤써치 조사)에 등극했다. 반면 문 대통령의 지지율(37.4%, 리얼미터 조사)은 추락했다. 이런 변화에 핵심 역할을 한 주인공이 추 장관이라는 데는 이론이 별로 없다. 이제 윤 총장의 역공까지 견뎌야 하는 여권의 난처함은 짐작이 간다.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스스로 결단하지 못한다면 (검사 탄핵을 규정한) 헌법 65조와 검찰청법 37조에 따라 국회가 나서야 한다’며 윤 총장 탄핵 카드를 꺼내들었다.
여기서 추 장관은 어떤 수를 둬야 할까. 논개가 되긴 어려워졌다. 논개 작전이 성공하려면 적장을 방심시킨 뒤 기습해야 한다. 속셈을 들킨 뒤엔 매를 벌 뿐이다. 추 장관 자신도 이번 전투에서 논개가 될 의향은 없어 보인다.
추다르크의 이미지라도 지켜낸다면 선방이다. 법원의 결정을 존중하고 징계위원회를 비롯한 모든 절차를 법과 규정에 맞게 진행해야 한다. 검찰총장의 임기를 2년 단임제로 정한 검찰청법의 취지를 상기한 후배 판사(조미연 재판장)의 말에 귀를 열어 보라. 설사 청와대와 여당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단호하게 거부하고, 윤 총장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한 임기를 존중해야 그나마 추다르크 답다.
이도 싫다면 결국 ‘추크나이트’의 길을 계속 걷게 될 거다. 이걸 성원하는 사람이 가장 많아 보이긴 한다.
강주안 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강주안의 시선] 논개, 추다르크 그리고 추크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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