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명화 돋보기] 미술관 안에서 보슬비가… 예술과 과학이 만났어요

최만섭 2022. 8. 8. 05:13

[명화 돋보기] 미술관 안에서 보슬비가… 예술과 과학이 만났어요

입력 : 2022.08.08 03:30

'비'를 주제로 한 작품
촘촘한 선 그어 빗줄기 표현하고 물기로 반짝거리는 바닥 묘사해
비 맞아볼 수 있는 체험 공간도

 작품 1 - 우타가와 히로시게, ‘갑작스러운 비에 놀란 여행객’(19세기). /위키피디아·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Olafur Eliasson
19세기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인 클로드 모네(1840~1926)나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는 해가 쨍하고 뜨는 날이면 미술 도구를 들고 야외로 나가 온종일 그림을 그렸어요. 햇빛 아래에서 시시각각 달라져 보이는 사물의 색상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묘사하기 위해서였죠.

그럼 비가 내리는 날엔 어땠을까요. 비 오는 날엔 계획했던 야외 스케치를 포기하는 화가도 많았는데요. 그중에는 비 오는 날만의 특별한 모습을 담아낸 미술가도 있습니다. 유리창에 방울방울 맺히며 굴러 내리는 투명한 빗방울이라든가, 물 고인 바닥에 빗방울이 떨어져 여러 개의 동그라미 파동이 이는 모습, 그리고 알록달록 우산으로 가득 찬 비 오는 거리 풍경 등이지요. 비를 주제로 한 작품을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비 오는 모습 역동적으로 표현

〈작품 1〉
은 19세기 일본의 목판화입니다. 1000점 이상의 작품을 남길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하며 당시 일본을 대표하는 목판 화가로 불렸던 우타가와 히로시게(1797~ 1858)의 '갑작스러운 비에 놀란 여행객'인데요. 사람들이 비를 맞으며 정신없이 뛰어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요.

그는 먹구름에서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를 촘촘한 선을 그어 나타냈습니다. 그림 아래로는 사람들이 지나가네요. 볏짚으로 만든 도롱이(허리나 어깨에 걸쳐 두르는 비옷)를 덮어쓴 사람도 있고 작은 우산을 든 사람도 있는데, 모두 폭우에 놀란 듯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히로시게는 그림을 사선 구도로 구성해 기울기를 냈어요. 저 멀리 보이는 나무숲은 왼편 아래에서 오른편 위쪽을 향해 올라가는가 하면, 사람들이 딛고 있는 도로는 반대로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내려가요. 이런 구도를 통해 그림 속 인물들이 정지한 것이 아니라 급히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준 겁니다.

이렇게 역동적인 구도로 비 내리는 풍경을 선보인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가 있습니다. 귀스타브 카유보트(1848~1894)인데요. 〈작품 2〉는 카유보트의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인데, 화가는 비에 젖어 촉촉한 도시의 모습과 사람들이 즐겁게 산책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췄어요. 공기 중 빗줄기는 묘사하지 않았지만, 바닥은 물기로 인해 반짝거리고 있지요.

히로시게의 그림이 좌우로 확장된다면, 카유보트의 그림은 앞쪽과 뒤쪽이 세로 방향으로 펼쳐져요. 이 그림은 가로·세로의 길이가 각각 2m를 조금 넘는 크기인데요. 오른쪽 아래에서 우산을 함께 쓴 채 걷고 있는 남녀는 실제 사람의 크기와 거의 같게 그려졌어요. 그래서 이 그림 앞으로 다가서다 보면 그림 속 두 인물이 내 앞으로 다가오며 함께 파리의 도로 위를 거닌다는 기분이 든답니다.

비 내리는 공간 만들어 보여주기도

〈작품 3〉
은 미술관 내부에 인공으로 무지개를 만든 모습입니다. 입자가 고운 물을 보슬비처럼 흩뿌려 만든 건데요. 덴마크 출신의 미술가 올라푸르 엘리아손(55)의 작품인 '아름다움'입니다. 관람자는 전시장 바깥에 멀뚱히 서서 보슬비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물이 뿜어져 나오는 안쪽 공간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안쪽으로 들어갈 땐 전시장에 비치된 우산을 쓰고 가도 되지요.

미세한 물방울들은 마치 무대 위에 드리워진 커튼처럼 막을 이루며 떨어져요. 막의 표면은 천장의 조명 빛을 반사하며 여러 색으로 반짝거립니다. 눈앞에 무지개가 어른거리는 거죠. 이 아름다운 광경 속에서 관람자는 자기도 모르게 무지개를 만지려고 손을 내밀게 돼요.

〈작품 4〉는 아예 여름철의 세찬 소낙비 속으로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도록 설치한 작품이에요. 유럽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 그룹인 랜덤 인터내셔널(Random International)이 영국에 있는 협업 스튜디오에서 만들었어요. 비가 자주 오지 않는 아랍에미리트(UAE)의 샤르자라는 곳에서 처음 선보인 뒤 여러 곳에 작품을 설치해 보여주고 있다고 해요.

이 작품은 천장과 바닥에 있는 센서로 움직이는 사람을 추적하고 감지하면서 작동합니다. 어둠 속에서 걷는 관람자를 피한 나머지 부분에 세찬 비가 내리는 거죠. 그래서 우산 없이도 비에 젖지 않고 빗속을 거닐면서 음향기기를 통해 들려오는 시원한 빗소리를 감상할 수 있답니다. 이렇게 관람자를 작품에 개입시켜 그 사람의 행동에 작품이 직접 반응하는 양식을 '인터랙티브 미술(interactive art)'이라고 불러요.

이처럼 미술가들은 날씨가 주는 감각적인 느낌을 작품 속에 담아 왔는가 하면, 그 느낌을 실제와 같은 상황으로 만들어 우리에게 직접 보여주기도 해요. 예술과 과학 기술의 만남으로 비와 같은 자연 현상을 문화적인 공간에서 체험할 수 있게 된 거지요.
 작품 2 - 귀스타브 카유보트,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1877). /위키피디아·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Olafur Eliasson
 작품 3 - 올라푸르 엘리아손, ‘아름다움’(2004). /위키피디아·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Olafur Eliasson
 작품 4 - 랜덤 인터내셔널, ‘비 내리는 방’(2018). /위키피디아·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Olafur Eliasson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조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