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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끊기고 가뭄까지… “아이들, 쓰레기 뒤지는게 일상”

최만섭 2022. 8. 1. 05:12

원조 끊기고 가뭄까지… “아이들, 쓰레기 뒤지는게 일상”

탈레반 재집권 1년… 아프간 국민의 비극
여성 권리보장 약속 안지켜져 소녀들, 강제결혼 공포에 떨어
남성들은 돈 벌려고 국경 넘어… 적발돼 감금·구타당하기도
세계최저 수준인 1인당 GDP 올해 300달러대로 더 떨어질듯

입력 2022.08.01 04:11
 
 
 
 
 
유엔지원금 받으려 줄선 아프간 여성들 - 28일(현지 시각) 아프가니스탄 카불 외곽에 있는 유엔난민기구(UNHCR) 캠프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가리는 부르카를 착용한 여성들이 지원금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지난해 8월 탈레반이 재집권한 이래 아프가니스탄 여성 인권은 20년 전으로 후퇴했다. /로이터 뉴스1

지난달 28일(현지 시각)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외곽 유엔난민기구(UNHCR) 캠프에 주민 1600명이 몰려들었다. 가족당 200달러씩 주어지는 정착 지원금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이들이다. 가족을 대표해 신분증을 제시하고 지원금을 받아간 이 중 상당수는 여성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가리는 이슬람 복장 ‘부르카’를 입고 있어 얼굴을 전혀 볼 수 없었다.

이들은 지난해 8월 이슬람 무장 단체 탈레반에 친서방 정부가 축출되기 전까지만 해도 자유로운 옷차림으로 거리를 다닐 수 있었지만, 지금은 바깥 출입 시 부르카를 입어야 하고 외출 자체도 엄격히 제한된다. 이날 지원금을 받아간 누르비비(가명)는 UNHCR 관계자에게 “남편이 돈 벌겠다고 6개월 전 이란으로 떠났지만, 이후 소식이 완전히 끊겼다”고 말했다.

탈레반 집권 후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원조를 중단하고 자국에 예치된 아프간 정부 자금 90억달러(약 11조7405억원)를 동결하자 아프간 경제는 걷잡을 수 없이 추락했다. 세계 최저 수준인 아프간의 1인당 국내총생산(약 500달러)은 올해엔 300달러대까지 급락할 것으로 유엔개발계획은 전망했다. 세계은행도 “탈레반 집권 후 아프간 1인당 소득수준은 최소 3분의 1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UNHCR 아프간 사무소의 피터 케슬러 공보관은 본지 화상 인터뷰에서 “성인 남성들은 막노동이라도 하겠다며 파키스탄·이란으로 밀입국하고, 아이들은 땔감과 먹을 것을 찾으려고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것이 일상이 됐다”고 말했다.

이런 참상은 탈레반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작년 8월 미국과 친서방 정부를 쫓아내고 20년 만에 귀환한 탈레반은 폭정으로 지탄받았던 1차 집권기(1996~2001)의 통치 방식을 답습하지 않겠다고 국제사회에 공언했다. ‘이슬람 율법의 틀 안에서’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여성 권리도 보장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약속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올해 3월 여학생들의 중·고교 등교를 불허했고, 5월에는 여성의 부르카 착용을 의무화하고 외출을 제한했다. 여성 상대 의료진 등 극히 일부 직종을 제외하고 관공서 등에서 일하던 여성 상당수가 일자리를 잃었다. 카불에 사는 소녀 아지자(가명)는 초등학교 6학년만 두 번을 다니고 있다. 탈레반의 조치로 중학교 진학이 불가능해지자 어쩔 수 없이 졸업한 학교에 다시 나가는 것이다. 또래 남학생들이 중학교 과정을 배우는 동안 아지자는 비슷한 처지의 소녀들과 슬픔을 공유하고 있다.

 
 

카불의 여학생들이 이런 상황에서도 굳이 등교하는 이유는 강제 결혼 때문이다. 집에 있다가 이웃이나 친지 눈에 띄어 강제 결혼하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국제 인권 단체 앰네스티는 지난달 27일 발간한 탈레반 치하 여성 인권 보고서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Death in Slow Motion)’에서 소녀들의 강제 조혼(早婚)이 탈레반 집권 후 기록적으로 폭증했다”고 밝혔다.

아프간 여성들만 수난을 겪는 것은 아니다. 비영리 매체 ‘더뉴휴머니태리언’은 최근 일자리를 얻으려 이란·파키스탄으로 밀입국하는 아프간 남성들의 수난을 보도했다. 샴스 우르 라흐만이라는 남성은 지난 3월 브로커에게 2만1000아프가니(약 32만원)를 주고 파키스탄행 밀입국 트럭에 올랐다가 단속에 적발돼 닷새간 유치장에서 구타당한 후 쫓겨났다. 이후 이란으로 밀입국하려다 현지 국경수비대에 체포되는 과정에서 다섯 살 아들까지 잃어버렸다. 그는 “누군들 얻어맞고 모욕당하고 싶겠느냐. 그러나 여기선 가족을 먹여 살릴 수가 없기에 탈출하려 했다”고 절규했다. 설상가상으로 탈레반 장악 후 자연재해도 잇따르고 있다. 전례 없는 가뭄으로 흉작을 겪은 데 이어 지난 6월에는 남동부에서 대지진이 발생해 1000명 이상 목숨을 잃었고, 대홍수도 발생해 400명 이상 사망했다.

탈레반은 경제 악화와 민심 이반에 고심하고 있다. 하이바툴라 아쿤드자다 탈레반 최고 지도자는 이슬람 명절 이드 알 아드하(희생제)를 맞아 지난달 6일 탈레반 공보 트위터에 경제 재건과 대내외 치안 강화 등 당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메시지를 냈다. 자신들이 경멸하던 서방 지도자들처럼 소셜미디어로 정치적 메시지를 발산할 정도로 탈레반의 위기의식이 상당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아프간의 참상이 지속될 경우 극단주의 테러 단체들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슬람국가(IS)의 아프간 지부인 IS호라산(ISK)은 탈레반 축출을 목표로 내걸고 간헐적으로 인명 살상 테러를 일으키고 있다. ‘정상 국가’를 자처하는 탈레반이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와 여전히 연대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미국 민주주의수호재단의 국제 분쟁 분석 사이트 ‘롱워저널’은 유엔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사망설이 돌았던 알카에다의 수괴 아이만 알 자와히리가 건재하며, 탈레반과 알카에다가 강력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