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左·右 두 날개’로의 복귀
윤석열 정권의 등장은
좌·우 교체가 정상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지 시금석
이제 보수는 공정·정의·법치로
좌파는 친북·반미 탈피해
평등·분배의 진보로 복귀해야
4·19 후 민주당 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을 지낸 김영선은 5·16 쿠데타 이후 기자들과 만난 사석에서 이런 분석을 내놓았다. “그 혼돈의 시대에 한국 사회에 ‘혁명 세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군(軍)과 대학(大學)뿐이었다. 대학은 4·19 혁명으로 민주당 정부를 만들어줬다. 그러나 1년 뒤 군부에 권력을 빼앗겼다. 대학은 조직화된 세력이 아니었고 군은 조직화된 세력이었다. 결국 조직된 힘이 이겼다.” 그의 주장은 정치권력이라는 것이 그 시대 필연(必然)의 산물(産物)이라는 데 근거한다. 깨어있는 의식, 조직의 힘, 권력욕, 국민적 요구, 이런 것이 권력을 장악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군부는 빈곤에서 벗어나려는 국민적 욕구와 효율적 정부를 원하는 정치적 요청을 배경으로 조직적 추진력 그리고 구성원의 권력욕을 잘 조합해 집권에 성공했고 30여 년간 권력을 유지했다. 그리고 25년 후, 대학의 좌파 운동권을 조직화한 586 세력이 마침내 한국의 정치권력을 장악했다. 문재인 좌파 정권의 등장이 그것이다. 김영선의 시대적 필연 논리는 뒤늦게 완결(?)된 셈이다.
그러면 윤석열 정권의 탄생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윤 대통령이 기성 정치권 출신이 아니고 검찰 수장에서 신데렐라처럼 등장한 것은 어떤 시대적 요청과 논리로 설명할 수 있을까? 윤 대통령 자신이 그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공정과 법치를 앞세웠다.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역설했다. 그리고 국가 안보와 나라의 이념적 정체성 회복을 강조했다.
운동권 정권의 내로남불, 유아독존적 비리를 사정(司正)하라는 국민의 요청이 팽배했다. 그래서 검찰이라는 사정 기관 수장이 청소 전문가(?)로 등장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청소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검찰 출신을 대거 기용해 야당에서 ‘검찰 공화국’이라는 공격을 받고 있지만 그의 행보는 시대적·국민적 요청에 응한 것이다. 다만 그 청소 작업이 마무리되면 아마도 윤석열 2기(期)는 다른 면모를 보일 것이고 또 그래야 한다.
윤석열의 등장이 갖는 또 다른 의미는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가정 환경과 전문 교육을 바탕으로 한 엘리트들이 리더로 부상(浮上)한 일이다. 전통적 체계를 갖춘 나라에는 예외 없이 지도자 교육 루트가 있고 과정이 있다. 영국은 고등학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지도자를 양성하는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미국도 하버드·예일·프린스턴 등 동부의 명문 대학이 지도자의 산실이다. 일본도 그 학교를 나와야 지도자로 출세하는 전통이 있다. 윤 대통령은 대학교수 집안에서 태어났다. 70년 건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서울대를 제대로 나온 대통령이 됐다(YS가 있다지만 그것은 6·25전쟁 혼란 중의 상황). 이것은 우리나라의 지도자상(像)을 정상화하는 의미가 있다. 우리는 비천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최고에 이르는 것을 두고 ‘개천에서 용(龍) 난다’고 한다. 과거에는 통했다. 이제는 아니다. 이제 용은 개천을 뚫고 솟아나는 것이 아니고 시스템에 따라 교육받아야 한다. 자기만 잘나고 똑똑하면 되는 것도 아니다. 주변이 모두 똑똑한 환경에서 같이 자라야 부정(不正)을 배격하고 공정을 배운다. 이제 대한민국도 그런 시스템을 가질 자격이 있다.
윤석열 정권 등장의 정치적 의미는 좌·우 교체의 정상화가 자리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시금석이라는 데 있다. 한국의 좌·우는 그동안 크게 왜곡돼왔다. 좌는 친북·용공·반일의 늪에 빠져있고 보수·우파는 친미·친일·반북의 프레임에 방치돼왔다. 우리는 윤 정권의 등장과 함께 이 전래적(傳來的), 고질적 이념 논쟁에 또 다른 여지는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좌파 운동권이 신주처럼 모셔온 친북·반미 일변도의 이념적 고질화에서 탈피해 좌파 본래의 진보로 복귀하는 변화를 기대한다. 그것은 더불어민주당이 586 운동권 주도의 굴레를 벗고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서 빈곤·노동·분배에 역점을 두는 본래의 진보적 좌파로 복귀하는 것이다. ‘윤 보수’에 대항하는 ‘민주당 진보’의 구도로 가야 한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한다. 새는 두 날개로 날아야 하지만 정치는 동시에 두 날개로 날 수가 없다. 왼쪽 날개로 날다가 오른쪽 날개로 교체하는 것이 정치다.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이 윤석열을 앞세워 공정·정의·법치의 날개로 난다면 좌파 정당인 더불어민주당도 평등과 분배에 중점을 둔 본래 진보의 날개로 나는 것이 한국의 ‘두 날개’를 위해서 바람직하다. 군도 586도 더 이상 이 시대의 필연의 존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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