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朝鮮칼럼 The Column] 그래도 공영방송 지배구조는 개혁하는 게 옳다

최만섭 2022. 5. 20. 05:02

[朝鮮칼럼 The Column] 그래도 공영방송 지배구조는 개혁하는 게 옳다

민주당, 정권 뺏기더니 공영방송 25명 운영위 案 발의
방송 안 내주겠단 속셈이지만 여야 7대4, 6대3 현 구조보다
다양성·전문성 증진할 수 있어…
새 정부, 정치적 유불리 넘어 큰 틀에서 수용할 만하다

입력 2022.05.20 03:20
 
 
 
 
 
서울 여의도 KBS(한국방송공사)./조선일보DB

지난달 27일 민주당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을 법안으로 발의했다. 여야 7대4 구조의 KBS 이사회, 그리고 6대3 구조의 MBC 방송문화진흥회와 EBS 이사회 각각을 25명 규모의 공영방송운영위원회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민주당이 이 시점에 이 안을 들고나온 의도는 자명하다. 공영방송 지배권을 순순히 내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집권 기간 내내 공영방송을 장악해 친정권 편파 방송을 남발하다, 정권이 교체되자 기존의 법이 친(親)정권 법이라며 고치자고 한다. 치밀한 수읽기도 엿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속셈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새 정부·여당이 큰 틀에서 이 안을 수용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혁이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약화된 위상, 정치적 편향, 품질을 둘러싼 시비 앞에 사람들은 묻는다. “아직도 공영방송이 필요한가?” 필자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민주주의가 과연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그렇다”인 것과 마찬가지다. 공영방송에는 권력의 방송, 주주의 방송과 구분되는 “국민의 방송”이라는 대체 불가능한 역할이 있다. 이 역할은 우리 공영방송의 역사에서 제대로 구현되지도, 심지어 제대로 이해되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 같은 공영방송의 역사적 오작동 내지 몰이해는 바로잡혀야 하는 문제이지, 공영방송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국민이 주인 되는 방송의 꿈은 여전히 소중하며 그 출발점은 정치권력에 종속된 지배구조의 개혁이다.

/조선일보 DB

둘째, 적절한 보완을 전제로 이 안이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실제로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영위원 25명의 추천 권한은 국회, 미디어 관련 학회, 시청자 기구, 방송 직능단체 등에 분산된다. 온건한 다원주의, 합의제 민주주의, 전문직주의가 자리 잡은 유럽의 공영방송에서 발견되는 일종의 조합주의 모형이다. 방송 직능단체들은 물론 학회들마저 진영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대화와 설득 대신 다수주의적 표 대결이 판치는 우리 현실에서 이 제도적 모형이 얼마나 잘 작동할지 의문이다. 민주당이 직·간접적으로 운영위원 25명 중 20명 안팎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리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현재의 11인 내지 9인 이사회 제도에서 더 심각했으면 심각했지 덜하지 않다. 정치적 쏠림의 우려 역시 세부적으로 보완하면 될 문제다.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새로운 제도는 궁극적으로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다원성과 전문성을 증진시킬 것이다.

 

셋째, 새 정부야말로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혁할 적임자이기 때문이다. 공영방송 지배구조는 지금까지 수많은 비판과 개선안이 제시되었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권력 스스로 공영방송에 대한 기득권을 포기해야 해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종래의 권력들은 보수·진보 할 것 없이 이 결정적 지점에서 등을 돌렸다.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이 지긋지긋한 폐습을 누군가는 끊어야 한다. 필자는 그 주체가 새 정부라고 생각한다. 이념과 독선에 젖은 패거리 진영 정치의 일원이길 거부하며 탄생한 권력이다. 단기적인 정치적 유불리를 넘어, 상식과 원칙에 비추어 ‘올바른 일’인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혁을 실행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다.

2014년 5월 29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노동조합원들이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에서 공동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조선일보 DB

넷째, 이 안은 이른바 ‘노영방송’을 바로잡는 데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공영방송이 국정을 흔드는 일이 반복되어 왔다. 그 중심에 노조가 있었다. 권력에 맞서면서 비대한 권력으로 자라난 이들의 행태는 정치적이었다. 진보 정권 시기, 정권과 그들이 후견주의적으로 임명한 경영진에 적극 협조한 반면, 보수 정권 시기, 정권 및 방송사 경영진과 사사건건 대립하며 방송을 파행으로 이끄는 이중성을 드러냈다. 더 나아가 노조는 공영방송 종사자들의 언론적 훈련장이자 의식의 개조장으로 기능(조항제, 2018)했다. 이러한 노조적 규범의 내면화 내지 전승 과정은 다원성과 전문성을 이념과 투쟁의 논리로 경직시킨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반(反)전문직주의적이었다. 이 노영방송 체제를 넘어설 때 우리 공영방송은 바로 설 수 있다. 금번의 지배구조 개선안이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민주당에 말한다. 검수완박부터 공영방송 개혁까지 이들이 최근 보여주는 행태는 몽니, 허둥거림, 강박 그 자체다. 협조할 것은 협조하고 시시비비를 가릴 것은 제대로 가리는 책임 있는 공당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현실 정치가 무엇이기에 순수함, 희생, 열정으로 가득했던 ‘5월’의 주체들이 이렇게까지 망가졌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조용히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