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개악

배임은 검찰, 직권남용은 경찰… 권력비리 ‘따로국밥 수사’

최만섭 2022. 5. 4. 05:32

 

배임은 검찰, 직권남용은 경찰… 권력비리 ‘따로국밥 수사’

[文 검수완박법 공포] 9월부터 법 시행… 예고된 사법혼란

입력 2022.05.04 03:39
 
 
 
 
 
국민의힘, 靑앞에서 긴급의총 -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3일 ‘검수완박’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긴급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대표는 “민주당이 무리한 입법을 강행할 때 이를 제지하는 발언을 하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은 공모자, 아니면 기획자”라고 했다. /국회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3일 오후 임기 중 마지막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의 공포안을 의결했다.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은 관보 게재 등을 거쳐 공포되며 이후 4개월이 지나면 시행된다

검수완박법’은 뇌물 등 부패 범죄와 횡령·배임 등 경제 범죄만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도록 했다. 6대 중대범죄 가운데 직권남용 등 공직자 범죄, 방위 사업 범죄, 대형 참사의 수사권은 올 9월에, 선거 범죄 수사권은 내년 1월 1일 경찰로 모두 넘겨야 한다.

또한 검사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완전 분리하고, 내부 고발자나 시민단체 같은 고발인은 경찰의 불송치(무혐의) 결정에 이의 제기를 못하게 했다. 법조인들은 “권력자들이 검찰 수사 대상에서 빠져나가도록 하면서 억울한 국민은 양산하는 ‘악법’”이라고 했다.

◇한 사건을 검·경 ‘쪼개기 수사’해야

현재 검찰엔 ‘대장동 특혜 의혹’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등 현 정권을 겨냥한 사건이 있다.

이 가운데 ‘대장동 사건’은 성남도시개발공사 간부가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부패 범죄), 민간업자에게 특혜를 줘 성남도개공에 최소 1827억원의 손해를 끼친 배임 혐의(경제 범죄)가 주된 수사 대상이다. 당시 성남시장을 지내 ‘대장동 윗선’으로 지목된 이재명 전 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추가 수사 여지도 남아 있다. 법조인들은 “부패·경제 범죄 수사권은 검찰에 남겼기 때문에 ‘대장동 사건’을 경찰에 넘길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했다.

‘검수완박법’의 내용과 문제점

그러나 다른 대형 사건은 사정이 다르다. ‘월성 원전’ 사건에서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은 직권남용·업무방해 혐의로,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1481억원대 배임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돼 있다.

하지만 이 사건도 아직 완전히 종결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검찰이 백 전 장관을 정재훈 사장에 대한 ‘배임 교사’ 혐의로 추가 기소하고 ‘문재인 청와대 윗선’의 직권남용 혐의로 수사를 확대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백 전 장관이 배임 교사 혐의로도 기소돼 유죄가 확정된다면, 민사 소송인 손해배상 소송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검찰로서는 이를 4개월 내에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한 검찰은 ‘울산시장 선거 개입’ 같은 선거범죄 사건을 올 연말까지만 수사할 수 있다. 검수완박 법안 처리를 주도한 황운하 민주당 의원은 ‘울산 사건’과 관련해 공직선거법 위반과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인물이다. 검찰 관계자는 “황 의원이 ‘검수완박’을 주도한 것은 코미디”라고 했다.

최근 본격화된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산업부 고위 공무원의 직권 남용 혐의가 주요 수사 대상이다. 검찰이 올 8월까지 사건을 마무리 못하면 통째로 경찰에 넘겨야 한다. 사정 기관 관계자는 “‘조국 사건’처럼 입시와 펀드 관련 비리, 학원 비리가 얽힌 사건은 검·경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하지 않는 한 ‘쪼개기’ 수사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검찰이 “검수완박법에 소급 규정이 없는 만큼 이미 진행된 수사는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이 경우에도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다.

 

공익 사건 실체 규명 어려워져

민주당은 형사소송법을 고치면서 경찰이 불송치 종결(무혐의 처리)한 사건에 대해 ‘고발인’은 이의 제기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장애인 학대 사건, N번방 사건 등 성범죄 사건, 공공기관·대기업 비리 사건의 경우, ‘고발인’에 해당하는 내부인이나 시민 제보에서 시작되는 사례가 많았다. 고발인 이의 제기권을 폐지한 것에 대해 참여연대는 지난 2일 “형사소송법 개정안 폐기”를 요구했다.

민주당은 또 사건 피해 당사자인 ‘고소인’이 경찰의 불송치 사건에 이의를 제기해 검찰이 보완 수사를 하는 경우에 다른 혐의가 발견되더라도 수사 확대를 못 하게 했다. 법조인들은 “억울한 피해자 구제를 차단하는 조항”이라고 했다.

수사를 개시한 검사가 기소할 수 없게 만든 검찰청법 조항도 논란이다. 검찰의 한 간부는 “상당한 독소 조항”이라며 “민주당이 그걸 알고서 통과시켰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검찰 수뇌부가 말 잘 듣는 기소 검사에게 중요 사건의 기소 여부를 결정하도록 해 사건을 통제하기가 더 쉬운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