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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꿈 접고… 위기마다 해결 나선 ‘경제 트리플 여왕’

최만섭 2022. 5. 3. 05:21

철학자 꿈 접고… 위기마다 해결 나선 ‘경제 트리플 여왕’

[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 [34] 폴란드계 유대인 옐런 재무장관

입력 2022.05.03 00:00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1946년 뉴욕 브루클린의 폴란드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였으며 아버지는 의사였다. 아버지는 가족이 사는 집 1층에 병원을 내고 주로 부두 노동자, 공장 노동자들을 진료했다. 보통 진료비로 2달러를 받았는데 실직자들은 무료로 치료해주었다. 옐런은 아버지를 통해 노동자들, 특히 실직자들의 어려움을 헤아리는 따듯한 시선을 가지게 됐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2014년 연준 의장 취임 때 “통계 뒤에 있는 개개인의 삶과 경험, 그리고 도전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했다. 소득 불평등의 확대에 따른 빈부 격차를 우려한 옐런의 지론은 “국가는 빈곤과 불평등을 해결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2020년 바이든 대통령은 옐런을 재무장관으로 발탁하면서 “실업과 노동의 존엄성에 초점을 맞춰 경력을 쌓은 인물”이라고 했다. 사진은 지난달 미 재무부에서 옐런 장관이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이다. /AFP연합뉴스

옐런은 어릴 때부터 호기심 많았고 활동력이 왕성했다. 고등학교 때 심리학 동아리, 역사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면서도 학교 신문 편집장을 지냈다. 게다가 공부까지 잘했다. 영문학 최우수상, 수학 최우수상, 과학 최우수상을 휩쓴 최우등 학생이었다. 고교 졸업 때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그녀가 다니던 해밀턴 고등학교는 학교 신문 편집장이 최우수 졸업생을 인터뷰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과 인터뷰를 진행해야만 했다.

옐런은 철학을 전공할 생각으로 명문 브라운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1학년 때 경제학 강의에 매료되어 전공을 경제학으로 바꾸었다. 이어 예일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녀의 전공은 당연히 ‘노동경제학’이었고, 논문 지도 교수는 신(新)케인스 학파의 거장이자 토빈세로 유명한 제임스 토빈이었다. 옐런은 스승의 강한 윤리 의식과 사회적 책임감의 영향을 받아 케인스주의 경제학자가 되었다. 그녀가 시장에 적절한 정부 규제가 필요하다며 낮은 인플레이션 못지않게 낮은 실업률을 중시하는 이유이다.

옐런은 1971년부터 1976년까지 하버드 대학교에서 조교수로 재직했다. 이후 옐런은 1977년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경제학자로 채용되어 국제 통화 개혁 연구를 맡았다. 이때 동료 유대인 경제학자 조지 애컬로프를 만나 결혼했다. 이후 둘은 연준을 떠나 런던정경대학에서 2년 동안 가르치다 미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옐런 부부는 1980년부터 버클리 대학에서 거시경제학을 가르쳤다. 옐런의 배우자 애컬로프는 정보가 공평하게 전달되지 않았을 때 빚어지는 경제 왜곡 현상을 분석한 이른바 ‘정보 비대칭 이론’으로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옐런은 1994~1997년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위원과 1997~1999년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거쳐 2004년에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되었고, 2010년 오바마 대통령이 연준 부의장으로 임명했다. 이후 2014년 연준 의장 취임 연설에서 “통계 뒤에 있는 개개인의 삶과 경험, 그리고 도전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 무렵 3차례 양적 완화 시행으로 2008년 금융 위기 이전에 8000억달러 내외였던 연준의 본원통화 발행액이 4조3000억달러로 무려 5배 이상 불어나 있었다. 옐런은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녀는 긴축으로 돌아섰을 뿐 아니라 정치권 눈치 보지 않고 무려 5차례나 기준금리를 올려 시중 유동성을 거둬들였다. 이것이 금리 인하를 주장하는 트럼프에게 밉보여 연준 의장 연임을 못 한 이유였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의 남편 조지 애컬로프(오른쪽) 조지타운대, UC버클리대 교수는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사진은 당시 예컬로프 교수가 옐런과 함께 기뻐하는 장면. /AFP연합뉴스

남편은 ‘정보 비대칭 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

옐런은 2014년에 소득과 부의 불평등에 대한 자료를 공개한 데 이어 2017년에도 후속 자료를 발표했다. 불과 3년 사이에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2014년도 자료만 해도 소득 점유율이 증가한 계층이 상위 3%였는데 상위 1%로 줄어들었다. 이는 소득 독식 체제가 날이 갈수록 심화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제 소득 점유율이 올라가는 계층은 상위 1%밖에 없었고, 그다음 9%는 현상 유지 중이며, 나머지 90%의 소득 점유율은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이는 중산층이 붕괴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문제는 이러한 자본주의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상위 10%의 소득이 국민 전체 소득의 절반에 달했다. 이는 10명이 사는 사회를 가정했을 때, 돈 잘 버는 한 사람이 나머지 9명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걸 의미한다. 이렇게 한 사람에게 소득이 집중되면 이 돈은 사회로 흘러나오지 않고 곳간에 축적되어 사회 전체 소비의 총량이 그만큼 줄어든다. 이것이 불경기와 공황의 원인이다.

소득 불평등의 확대로 빈부 격차는 더 커졌다. 상위 10%가 미국 전체 부의 77%를, 나머지 90%가 23%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문제는 하위 50%다. 이들은 소유한 순재산이 거의 없다. 전체 부의 1% 남짓을 소유하고 있다.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사람들로 위기에 취약한 계층이다.

 

옐런은 경질되는 마지막 날까지 직분에 충실했다. 그녀는 2018년 2월 2일 임기 마지막 날 미국 3대 은행인 웰스파고에 대해 전례 없는 초강력 제재를 가했다. 웰즈파고는 실적 달성을 위해 직원들에게 유령 계좌를 350여 만개를 만들게 했다. 고객들에게 자동차 보험을 억지로 들게 하고, 모기지 대출자들에게 부당한 수수료를 부과했다. 또 자영업자들을 속여 조기 해지 수수료를 내게 했다. 옐런은 웰스파고에 자산 규모 동결 명령과 함께 이사진 교체를 명령했다. 연준 역사상 처음 단행한 조치였다. 이후 은행과 최고경영자 개인에 대한 벌금도 뒤따랐다. 이 제재로 웰스파고는 2조달러 이상의 자산 취득을 제한받았고, 주가는 56% 하락했다.

“국가는 빈곤과 불평등을 해결할 의무가 있다고 믿습니다.” 이는 재닛 옐런의 지론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재무장관으로 재닛 옐런을 발탁하면서 “그녀는 실업과 노동의 존엄성에 초점을 맞춰 경력을 쌓았습니다”라고 지명 이유를 밝혔다. 이로써 그녀는 클린턴 정부에서 미국 역사상 첫 여성 경제자문회의 의장을, 오바마 정부에서 연준 100년 역사상 첫 여성 연준 의장을, 바이든 정부에서 미국 재무부 232년 역사상 첫 여성 재무장관을 맡아 이른바 경제정책 핵심 요직 세 곳을 다 거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연준 의장때 금리 내리라는 트럼프와 갈등

미국의 자본주의는 이제 팬데믹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금융 자본주의에서 포용적 자본주의로 바뀌고 있다. 첫째, 팬데믹 사태로 어려운 하위 50%의 붕괴를 막기 위해 통화 공급 주도권이 연준에서 재무부로 넘어왔다. 비상 상황에서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통화 정책보다 특정 대상을 지원하는 재정 정책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둘째, 통화 공급은 월스트리트(금융시장)를 통한 유동성 살포에서 메인 스트리트(소비자와 기업이 있는 실물 시장)를 통해 필요한 곳에 필요한 양만큼 쏴주는 ‘점적관수(點滴灌水)’식 공급으로 바뀌었다. 재정에서 개인들에게 직접 지급되는 돈이 다른 재정 집행액의 두 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셋째, 재정 기능이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재정의 3대 기능, 곧 ‘자원 배분, 경제 안정화, 소득 재분배’ 기능 중에서 ‘경제 안정화’ 기능을 중요시했다면 이제는 ‘소득 재분배’ 기능이 더 중요해졌다.

 

[美 치부 드러낸 옐런] “상위 5%가 富 63% 차지… 하위 50%, 겨우 1% 소유”

재닛 옐런은 2014년 10월 보스턴 연방준비은행이 주최한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100년 만에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고 지적했다. 연준 의장이 경기 동향이나 통화 정책이 아닌 불평등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재닛 옐런은 2014년 연준 의장에 취임해 ‘소득과 부의 불평등’ 데이터를 공개했다. 그녀는 “미국의 불평등 정도와 불평등의 지속적 확대 추세가 매우 우려스럽다”며 그 누구도 공개하지 못했던 미국의 치부를 만천하에 알린 것이다. 금융 자본주의를 이끌고 가는 연준의 수장이 금융 자본주의의 본질적 문제점과 그 폐해를 솔직히 밝힌 것이다. 옐런은 특히 “상위 5%의 부가 1989년에는 미국 전체 부의 54%를 차지했는데, 2013년에는 63%로 늘어났다”며 “같은 기간 하위 50%의 부는 전체 3%에서 1%로 오히려 줄어들었다”고 서민 경제에 대해 걱정했다.

이는 여론의 핫이슈가 되어 정치판을 흔들었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 테마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도 가장 중요한 선거 의제로 떠올랐다. 당시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버니 샌더스 후보는 “상위 1%가 하위 90%의 소유를 모두 합친 정도의 부를 독점하는 것은 비도덕적이고 그릇된 일”이라며 부자 증세를 통해 누구에게나 대학 등록금을 무상으로 지원해 교육의 평등을 이루겠다고 호언했다. 그러자 다른 대선 후보들도 당파를 초월해 앞다투어 서민 경제를 위한 공약을 쏟아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