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덩샤오핑처럼 먼저 ‘정돈 사업’을
문혁 피해자 명예 회복과 軍·공기관 정상화 먼저 하고
이후 개혁·개방 본격화… 尹정부는 ‘촛불 정돈’ 해야
죽어가던 마오쩌둥이 1975년 후계자로 덩샤오핑을 복권시켰다. 문화대혁명으로 난장판이 된 중국을 물려줬다. 덩이 처음 한 일은 개혁·개방이 아니었다. 질서 회복을 위한 ‘정돈(整頓) 사업’부터 했다. ‘정돈’은 다음 전투를 위해 병력과 보급선을 재편성하는 걸 의미한다.

먼저 ‘군(軍) 정돈’을 했다. 문혁에 동원되면서 중공군은 600만명으로 비대해졌다. 100만명 이상 불어났다. 그런데 내부 정치 싸움만 하다 보니 실제 전투력은 엉망이었다. 1979년 베트남과 전쟁에서 사실상 패하기도 했다. 덩은 160만명을 감축하고 훈련과 교육을 문혁 이전으로 되돌렸다. 공공기관 중에는 홍위병이 장악한 철도를 정돈했다. 그제야 막혔던 중국 물류망에 숨통이 트였다.
지난 5년간 한국군은 ‘훈련 아닌 대화로 나라 지킨다’는 군대가 돼 버렸다. 핵무장한 적(敵)이 코앞인데 한·미 연합 훈련은 4년째 ‘컴퓨터 게임’으로 한다. 전방 철책은 수시로 뚫리고, 후방 부대는 치매 노인과 취객이 들락거린다. 상병이 야전삽으로 여성 대위를 폭행하고, 남성 부사관이 남성 장교를 집단으로 성추행하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문혁 때 중공군도 이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산 2조원 이상 공공기관 40곳 중 한전, 철도공사 등 19곳이 번 돈으로 이자조차 못 내는 부실 상태에 빠졌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를 떠안다가 ‘좀비 기업’이 된 것이다. 그런데도 임직원 숫자는 계속 늘었고 정권 ‘낙하산’의 놀이터가 됐다. 윤석열 정부도 속으로 붕괴한 군과 공기업 정돈부터 해야 한다.
문혁이 남긴 가장 큰 상처는 ‘분열’이었다. 억울하게 희생된 간부가 수백만 명이다. 덩샤오핑은 후야오방에게 피해자의 명예 회복에 관한 정돈 사업을 맡겼다. 후는 공산주의청년단 제1서기를 지내 간부들 사연을 잘 알았고, 마오의 극좌 노선에 반대하다 숙청된 전력도 있었다. 쫓겨난 과학자부터 복권시켰는데 1980년대 개혁·개방을 뒷받침하는 인재 풀이 됐다. 문혁 희생자들이 국가 보상을 받고, 실력 있는 간부들이 제자리를 찾으면서 문혁 혼란도 수습되기 시작했다. 1987년 실각한 개혁파 후야오방의 2년 뒤 사망은 ‘천안문 사태’의 도화선이 됐다. 그런데도 그를 추모하는 원로 간부가 여전히 많은 것은 명예를 돌려준 은공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문 정부의 ‘적폐 몰이’ 수사로 전(前) 정권 인사가 100명 넘게 구속됐다. 이 중 국정원에서만 350여 명이 검찰 조사를 받았고 40여 명이 감옥에 갔다. 전직 국정원장 3명은 관행대로 특수활동비를 청와대에 지원했다가 아직도 수감 중이다. 국정원의 특활비 지원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있었다고 한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인데, 대통령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국정원장이 존재할 수 있는가. 북한 간첩 20여 명을 검거한 전 대공수사국장도 직권 남용으로 구속됐다. 전 심리전 국장은 문제가 된 댓글 중 0.0045%만 정치 관여성으로 특정돼 국고(國庫) 손실 액수로는 10여 만원에 불과한데도 징역형을 살았다고 한다. 평생 공직자로 대한민국 안보를 최일선에서 지킨 사람들이다. 개인적 부패는 한 건도 없다. 반면 뇌물죄인 한명숙 전 총리는 복권됐고, 내란 선동죄인 이석기 전 의원도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이것이 정상인가.
덩샤오핑은 문혁 보복으로 새로운 원한을 쌓지 않았다. 대신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방법으로 분열 상처를 치유하려고 애썼다. 중국이 10년 문혁 광풍을 겪고도 ‘굴기’의 에너지를 모은 건 무슨 혁명 정신이 아니라 질서와 상식을 회복하려 했던 ‘정돈 사업’이 밑거름이 됐다. 새 정부의 ‘다시 대한민국’도 정돈에서 시작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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