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올해 예산 美 17% 獨 19% 佛 8% 줄였는데… 한국은 되레 늘려

최만섭 2022. 4. 1. 05:19

올해 예산 美 17% 獨 19% 佛 8% 줄였는데… 한국은 되레 늘려

재정건전화 나선 선진국… 한국은 계획자체가 없어
獨은 나랏빚제한법까지 다시 적용, ‘코로나 돈풀기’서 적자감축 선회
한국은 예타 면제·추경 남발 “인수위, 文정부 재정중독 끊어야”

입력 2022.04.01 04:20
 
 
 
 
 
/연합뉴스 8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에서 시민들이 'IMF 반대'라고 적힌 현수막을 앞세우고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이 타결한 445억 달러(약 54조원) 상당의 채무 재조정 협상 결과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코로나 충격이 조금씩 가시자 선진국들은 그간 풀었던 돈줄을 잠그고 있다. 빚과 지출을 줄이고 재정을 건전하게 바꾸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 정부는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국의 국가 채무는 2016년 말 627조원에서 올해 1076조원으로 450조원이나 급증하면서 1000조원을 돌파했지만, 정부는 제대로 된 재정 건전성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국민 1인당 국가 채무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1284만원이었으나 현재는 1942만원으로 51% 급증했다.

전직 경제 관료, 재정 학자 등 120여 명이 회원으로 있는 건전재정포럼은 31일 ‘차기 정부 재정 개혁 과제’ 보고서를 내고 “적자 국채 100조원, 국가 채무 1000조원 시대에 돌입했는데 재정 정상화 계획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국가 부채 급증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독·불 등 재정 허리띠 조인다

선진국들은 이미 재정 건전화 작업에 착수했다. 코로나 이후 각종 지원금을 풀면서 전례 없는 확장 재정을 이어왔지만,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미국(-17.1%)·독일(-19.1%)·프랑스(-8.1%)는 올해 예산을 작년보다 평균 14.8% 줄였다. 한국의 예산이 작년 604조9000억원(추정)에서 올해 607조7000억원으로 오히려 0.5% 증가한 것과 대조된다.

독일은 작년에 중단했던 부채 제동 장치인 ‘채무제한법’을 내년부터 재적용하기로 했다. 당장 올해 채무 상환 등을 통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 적자 비율을 작년(-9%) 대비 3분의 1 수준(-3%)으로 감축한다. 2025년에는 이 비율이 0%인 재정 균형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프랑스는 2022~2027년 연평균 지출 증가율을 0.7%로 제한해 2027년까지 GDP 대비 재정 적자를 현재 -8.9%에서 -3% 수준으로 줄이기로 했다. 미국도 작년 -17% 수준으로 늘어난 GDP 대비 재정 적자 비율을 올해 -7.8%까지 감축할 계획이다.

반면 기획재정부는 지난 29일 발표한 내년 예산 편성 지침에서 지출 구조조정으로 10조원을 절감하겠다고 했지만, 해마다 반복되는 방침일 뿐 특별한 대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4000억원 규모의 민간 보조 사업 460여 건을 올해 구조조정한다고 했지만, 이 역시 반복해온 내용이다.

 

향후 5년간 국가 부채 증가 속도 1위

작년 10월 IMF(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한국의 향후 5년간 국가 채무 증가 속도는 선진 35국 중 1위로 전망됐다. IMF는 2026년 말 한국의 국가 채무가 GDP 대비 66.7%를 기록할 것으로 봤다.

EU(유럽연합) 재정 준칙 기준(국가 채무 비율 60%)을 웃돌 경우 국가 재정 건전성에 대한 국제적 평가가 부정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국가 신용 등급 하락과 부도 위험이 커지는 것이다. 외국인들이 투자금을 빼가면서 환율·금리가 치솟아 국민이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게 될 수 있다. 포퓰리즘(인기 영합주의)이 만연한 아르헨티나·볼리비아 등 남미 국가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한국처럼 외국 자본 투자가 필요한 나라는 선진국보다 경제지표를 훨씬 건전하게 관리해야 한다. 그래야만 외국인들이 안심하고 대출해주거나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했다.

포럼 대표 최종찬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포퓰리즘 공약을 걷어낼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지난 5년간 이어져온 재정 중독을 끊고 국가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새 정부의 밑그림을 짜는 인수위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5년간 남발·반복된 예타 면제와 추경

포럼은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와 추가경정예산(추경) 남발을 나랏빚 급증 원인으로 지목했다.

예타는 대형 국책 사업의 타당성을 국책 연구원 등이 검증해 효과가 떨어지는 사업을 걸러내는 절차다. 포럼은 “2019년 5월부터 개정·시행된 예타 요건 완화 등으로 예타 제도의 실효성이 급격히 약화됐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예타 면제 규모는 106조원(지난 2월 말 현재)으로 박근혜(25조원)·이명박(61조원) 등 이전 정부들과 비교했을 때 최대 4배나 많았다. 그만큼 사전 타당성 조사를 생략한 채 지역 개발 사업 등에 돈을 쏟아부었다는 뜻이다.

본예산 외 추가로 짜는 추가경정 예산도 문 정부 집권 후 매년 편성됐다. 지난 1월까지 10번째 추경이 편성돼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전비 조달을 위해 일곱 차례 추경을 짠 이후 최다 기록을 세웠다. 5년간 추경 규모만 151조2000억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