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학봉 전문기자의 Special Report] 집값 거품 1위 뉴질랜드, ‘금리 인상·대출 규제·공급 확대’에 급락 공포
‘미친 집값’ 어떻게 잡았나
“오늘의 최고가가 내일의 최저가”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치솟던 뉴질랜드 집값의 하락세가 완연하다. 뉴질랜드부동산연구소(REINZ)는 최근 전국 주택 가격이 석 달 전에 비해 평균 2.3%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집값이 가장 비싼 오클랜드는 석 달 전에 비해 5.5% 하락했다. 현지 연구소와 전문가들은 금리 인상 등을 이유로 올해 5~10% 하락을 점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뉴질랜드에서 너무 비싸게 집을 사는 것을 우려하는 ‘풉’(FOOP, fear of overpaying)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당장 주택을 사지 못하면 더 비싼 가격에 집을 살 것 같은 ‘집값 급등 우려’가 ‘집값 급락’에 대한 공포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금리 3번 올려, 모기지 금리 급등
뉴질랜드의 집값은 2019년 12.3%, 2020년 19.3%, 2021년 21.5% 치솟으면서 경제연구소 블룸버그 이코노믹스가 지난해 주택시장 거품 1위 국가로 꼽았다. 한국은 19위였다. 한국보다 면적은 2.6배나 넓지만 인구 500만명에 불과한 뉴질랜드가 집값 거품 천국이 됐고 최근 집값이 하락세로 돌아선 이유는 뭘까?
‘미친 집값’의 시대가 끝나간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작년 10월 이후 세 차례 기준금리 인상과 강력한 대출 규제 때문이다. 뉴질랜드 정부는 지난해 집값 폭등이 사회문제가 되자 중앙은행에 금리를 결정할 때 집값을 고려해 달라고 요청했다. 뉴질랜드 중앙은행은 지난 10월과 11월, 올 2월에 0.25%포인트씩 금리를 인상했다. 2%대까지 떨어졌던 2년 고정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가 4%대로 치솟았다. 앞으로 5~6%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출까지 감안한 심사로 대출 급감
뉴질랜드 정부는 작년 3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도입, 실거주자와 투자자에게 각각 80%, 70%를 적용했다. 작년 5월부터 다주택자 LTV가 60%로 강화됐다.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 면제를 위한 보유 기간을 기존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했다.
작년 12월부터 은행들은 3개월간의 소득과 지출명세서를 심사, 상환 능력을 고려해 대출 금액을 결정한다. 현지 언론들은 애완견이나 여행에 돈을 너무 많이 지출했다는 이유로 대출이 거절됐다는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오클랜드에서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써니 채 사장은 “고정지출까지 감안한 상환능력 심사 강화로 대출이 집값의 80% 수준에서 60% 이하로 줄고 여유 자금이 없는 젊은 층은 주택을 구입하기 어려워지면서 거래량이 급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에 대출 규제가 겹치면서 1월 주택 거래량은 전달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고 집값도 떨어졌다.
여당과 야당, 주택 공급 확대 합의
여당과 야당이 함께 주택 공급을 확실하게 늘릴 것이라는 대국민 약속도 했다. 집권 여당 노동당 소속 메건 우즈 주택부 장관과 야당인 국민당의 주디스 콜린스 대표가 작년 10월 공동기자 회견을 통해 10년 내에 최대 10만5500채의 신규 주택 건설을 가능하게 하는 법률개정안을 공동으로 발의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택지에 주택을 더 많이 짓도록 자원환경관리법(Resource Management Act)을 개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저층 주거 지역에서 대지당 1가구, 2층 건물로 제한하던 규제가 풀려 정부 허가나 지역 주민 동의 없이 부지 면적 50%까지 최대 3층 높이로 3가구의 주택을 지을 수 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여·야당 인사들은 “주택 부족은 불평등을 부추기고 젊은이들의 희망을 빼앗고 있다” “도시계획 규정이 집을 짓는 것을 더 어렵게 하고, 더 비싸게 만든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고 했다.
현지 언론은 ‘주택 문제 해결을 위한 여야의 역사적 정치 휴전’이라고 평가했다. 집값이 폭등하면서 대책을 놓고 사사건건 대립하던 여당과 야당이 정권이 교체돼도 공급 확대 정책이 지속될 것이라는 신호를 시장에 보낸 것이다.
만성적 주택공급, 이민이 변수
뉴질랜드가 거품 1위 국가라는 오명을 쓴 것은 근본적으로 건축 규제에 따른 만성적인 주택 공급 부족이 원인이다. 인구가 300만명대였던 1970년대에 주택 인허가가 연간 4만 가구였지만, 인구가 500만명 안팎으로 늘어났는데도 2만~3만 가구 수준이었다. 1000명당 주택 인허가가 1973년 13.2가구에서 2011년 3.1가구까지 급락했다. 지난해 집값 급등으로 인허가 건수가 4만건으로 급증했지만, 여전히 주택이 부족하다. 자가보유율이 한때 74%까지 치솟았지만 현재 64.5%까지 떨어졌다. 뉴질랜드는 임대료도 치솟아 선진국 중에서 홈리스 비율이 가장 높고 이동주택이나 텐트에서 숙박하는 젊은이들까지 등장했다. 집이 없어 공공주택의 입주를 신청한 대기자가 2만5000가구로, 최근 5년간 5배 늘어났다. 저신다 아던 총리는 10년간 주택 10만 채를 공급하겠다는 ‘키위빌드’ 사업을 공약했지만, 진척이 거의 없다. 여당과 야당이 초당적으로 공급 확대를 위한 법안개정안을 발의한 이유이다. 강동훈 뉴질랜드 한인건설협회장은 “자재비 폭등으로 건축비가 많이 올랐고 코로나가 종료되면 이민 등으로 인구가 다시 증가할 것”이라며 “주택가격 조정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현금 부자에 유리했던 규제 정상화” vs “집값 자극, 가계부채 리스크”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출 규제 완화를 공약했다. 정부는 투기가 우려되는 지역에서 집값이 9억원을 초과하면 LTV(주택담보대출 비율)를 20%로, 15억원이 넘으면 대출을 금지했다. 분양가가 9억원이 넘으면 중도금 대출도 안 된다. 당선인은 생애 최초 주택 구입은 LTV를 80%까지, 나머지는 LTV를 최대70%까지 높이겠다고 했다. 현금 부자만 집을 살 수 있게 한 비정상적 규제의 정상화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집값 오름세 심리를 자극하고, 거품이 잔뜩 낀 집을 사라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미국, 일본 등은 철저한 신용평가를 통해 대출이 이뤄지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LTV를 제한하지 않는다. 신용도가 낮으면 LTV가 낮지만 상환 능력이 충분하면 100% 대출도 가능하다.
다만 일부 국가에서는 금리 인상과 향후 가계 부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소득뿐만 아니라 지출까지 심사해서 대출을 줄이고 있다. 캐나다는 금리가 인상됐을 때를 가정, 상환 능력을 심사하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해 대출을 조이고 있다. 서종대 주택산업연구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집값을 잡는 수단으로 대출 규제를 도입했지만, 효과가 없었다”면서 “비정상화의 정상화라는 측면에서 대출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대출 규제 완화가 주택시장 과열을 부르고 가계부채 리스크를 높일 수 있다는 반대론도 있다.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2분기 기준으로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4.2%로, 조사 대상 37국 중 1위다. 서영수 키움증권 이사는 “대출 규제 완화는 집값 상승세를 자극할 뿐만 아니라 가계부채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우진 주거환경연구원장은 “대출 규제 완화는 청년층의 빚내서 집 사기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향후 집값 하락기에는 가계 파산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종대 주택산업연구원장은 “금리가 상승기여서 대출 규제가 집값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서남북] 머스크가 춘 막춤이 부럽다 (0) | 2022.03.31 |
---|---|
대출규제 완화도 문제… LTV 풀어도 DSR이 발목 (0) | 2022.03.31 |
“5년 고난 겪은 원자력, 이젠 미래 기술로 발전시킬 것” (0) | 2022.03.23 |
[한삼희의 환경칼럼] 새 정부, ‘탄소 중립’ 만큼 ‘기후 위기 방어’도 시야에 넣길 (0) | 2022.03.23 |
[단독] 탈원전 앞장선 탄중위, 인수위에 ‘원전 확대案’ 낸다 (0) | 2022.0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