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경쟁에 ‘재미’ 앞세운 與野… 전문가 “국가대사 논의 사라져”
2022 대선 캠페인 달라진 3가지 공식
[1] 소셜미디어 ‘속도전’
[2] 정치는 ‘재미’다
[3] 짧아야 산다
“650만명이 1시간 30분짜리 이 후보 인터뷰 유튜브 영상을 봤어요. 과거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에요.”(이재명 선대위 관계자)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가 이대남(20대 남자) 여론을 완전히 돌렸어요. 이제 역전극이 시작될 겁니다.”(국민의힘 관계자)
9일 여야 선대위 관계자들이 서로 자신들의 캠페인이 먹혀들고 있다며 전한 내용이다. 민주당에선 “순발력에서 이 후보가 압도적”이라고 했고, 국민의힘에선 “이슈 속도전에 불이 붙었다”고 했다. 코로나로 대면 접촉이 불가능해지고 MZ세대라 불리는 2030세대가 정치적 캐스팅보터로 부상하면서, 대선 캠페인의 양상이 완전히 ‘온라인 퍼스트’ 전략으로 바뀐 것이다. 유튜브, SNS를 넘어 인공지능(AI)·메타버스(3차원 가상 세계)까지 총동원하면서 대선이 IT 전쟁으로 번진 셈이다.

온라인은 속도와 즉흥성이 생명이다. 이 후보가 최근 공식화한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 공약이 대표적이다. 이는 민주당 청년 선대위가 지난 2일 건의한 것을 이 후보가 발 빠르게 받아들인 것이다. 이후 이 후보는 유튜브에서 59초짜리 ‘쇼츠’ 영상에 직접 출연해 “이재명은 찍는 게 아니라 심는 겁니다”라고 했다. 윤 후보 측의 반격 카드도 ‘속도전’이다. 윤 후보는 지난 7일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 딱 일곱 글자만 올렸다. 그러자 지난해 4·7 재보궐선거에서 보수를 지지했지만, 윤 후보의 잇단 말실수로 등을 돌렸던 ‘이대남’들이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며 ‘귀환’의 뜻을 보였다. 이 또한 국민의힘 선대위 개편 후 의사결정 과정이 짧아지고 이준석 대표가 개입하면서 가능했던 일로 알려졌다.
긴 설명보다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방식도 대세가 됐다. 2년 전 총선 때까지만 해도 공약을 몇 장의 이미지와 글로 알리는 ‘카드 뉴스’가 유행처럼 제작됐다. 하지만 이제는 카드 뉴스도 ‘퇴물’이 됐다. 민주당 선대위는 1분 미만의 쇼츠 영상 수백 개를 분야별로 제작한다는 계획이다. 국민의힘 선대위는 지난 8일부터 생활 밀착형 공약을 59초 분량으로 만든 쇼츠 영상을 공개하고 있다. 영상은 이준석 당대표와 원희룡 정책본부장이 ‘지하철 정기권 버스 환승’ 등을 공약하면서 “선조치 후보고”를 외치며 끝난다.
반대로 분량 제한이 없는 뉴미디어 특성을 활용한 긴 인터뷰가 히트를 치기도 했다. 이 후보가 지난달 경제 전문 유튜브 ‘삼프로TV’에 나와서 했던 인터뷰는 조회 수가 650만회를 넘어 윤 후보의 두 배에 달했다. 이 후보 측은 “몇 달을 철저히 준비한 인터뷰라 가능했던 것”이라고 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지난 6일부터 매주 목요일 ‘심요일에 만나요’라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주 4일제 등 핵심 공약을 긴 호흡으로 설명한다는 취지다.
인공지능과 메타버스 기술의 등장은 이번 선거의 가장 새로운 모습이다. 이 후보 측은 AI 기술을 활용한 ‘이재명 챗봇(대화 로봇)’을 운영 중이다. 예를 들어 ‘대장동 특혜 개발 의혹은 누구의 잘못이냐’고 질문하면 “성남시 공공 개발 추진을 막은 것도 국민의힘, 뇌물을 받은 것도 국민의힘”이라고 대답한다.
윤 후보는 ‘AI 윤석열’을 통해 공약 사이트에 올라오는 이용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윤 후보는 이를 위해 지난 11월에 이틀에 걸쳐 단어 수천 개를 일일이 녹음한 것으로 알려졌다. AI 윤석열은 최근 공개된 영상에서 ‘후보 사퇴하느냐’는 질문에 “댓글 창을 보면 예상은 했지만, 이런 댓글을 보니 그래도 슬픕니다. 정말 슬픕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여기에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공약 발표 기자간담회를 메타버스 기술을 활용한 가상공간에서 진행했다. 신당 새로운물결의 후보인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인재 영입 1호로 AI 대변인 ‘에이디’를 내세웠고, 자신의 아바타 ‘윈디’를 공개하기도 했다.
주변부였던 놀이와 예능 요소도 대선의 필수 요소가 됐다. 예능 방송 출연 수준을 넘어 후보들이 직접 유튜브 등에서 자신을 비하하며 웃음을 주는 것으로 진화한 것이다. 이 후보는 지난달 11일 유튜브 생중계 방송에서 “찢찢찢찢”이란 댓글이 올라오자 “이거 나 욕하는 거죠?” “요즘 ‘찢었다’가 유행이던데”라고 말했다. 자신의 형수 욕설 논란을 먼저 거론한 것이다. 그는 이후 유튜브 등에서 자주 “찢”이란 표현을 스스로 쓰고 있다. 윤 후보가 지난 8일 이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멸치와 콩을 든 사진도 온라인에서 하나의 놀이처럼 번졌다. 멸치와 콩이 앞서 인스타그램 계정에 ‘멸공’이라는 글을 쓰며 논란이 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뉴미디어를 통한 공중전은 자극적이고 가벼운 콘텐츠로 정치적 갈등만 키울 뿐이란 비판도 많다. 유튜브와 SNS뿐만 아니라 메타버스 등 새로운 플랫폼들이 지지자들의 ‘확증 편향’만 강화하지 중도 확장에 거의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지자들만 똘똘 뭉치게 하고, 상대방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콘텐츠만 양산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황근 선문대 교수는 “온라인 선거전이 중심이 되면서 (연금 개혁·외교 안보 등) 핵심적인 정책 문제는 사라지고 선거의 주변적 요소가 더 중요해졌다”며 “이 때문에 후보의 개성과 외모가 중요해지고 (상대방) 언행의 말꼬리 잡기만 계속 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각 후보의 지지율이 40%를 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자기 진영을 상대로만 캠페인을 하기 때문”이라며 “이런 방식은 선거가 끝난 후에 갈등만 더 키울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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