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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식 전문기자의 Special Report] 3년 만에 물거품 된 시진핑의 반도체夢… 구세대 기술 지키기 급급

최만섭 2021. 12. 30. 04:56

[최유식 전문기자의 Special Report] 3년 만에 물거품 된 시진핑의 반도체夢… 구세대 기술 지키기 급급

美 제재에 벼랑 끝 몰린 中 반도체

입력 2021.12.30 03:00
 
 
 
 
 

상하이에 본사를 둔 세계 5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 SMIC는 작년부터 수십억 달러가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를 잇달아 추진 중이다.

총 78억달러가 들어가는 베이징 생산 라인은 작년에 발표됐고, 올 2월 첫 삽을 떴다. 3월에는 23억6000만달러를 들여 남부 선전에 12인치 웨이퍼 생산 라인을 구축하는 계획이 확정됐고, 9월에는 국가반도체대기금과 합작 법인을 설립해 총 88억7000만달러가 소요되는 상하이 12인치 웨이퍼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투자 총액은 거의 200억달러에 이른다.

그래픽=양인성

겉으로만 보면 중국 반도체 굴기가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녹록지 않다. SMIC가 발표한 세 공장은 모두 28나노 제품을 생산하는 시설이기 때문이다.

28나노 반도체는 삼성전자가 10년 전에 이미 개발해 상용화한 기술로 업계에서는 ‘숙련 기술’로 분류된다. 5나노 이하의 미세 공정을 놓고 경쟁 중인 삼성전자나 대만 TSMC에서는 폐기 대상으로 꼽히는 구세대 생산 라인이다.

 

미 제재에 대만 기술 인력까지 이탈

SMIC가 이런 구세대 기술에 매달리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낡은 기술이긴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부족 현상을 빚고 있는 카메라 이미지 센서, 자동차용 반도체 등이 이 28나노 기술을 이용해 생산된다. 중국 내 수요가 풍부해 시장성이 있고 중국 정부가 추진 중인 반도체 자립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미국의 강도 높은 반도체 제재로 10나노 이하 미세 공정 개발이 불가능해졌다는 요인도 있다. 10나노 이하 제품을 개발하려면 네덜란드 ASML사의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가 필요한데, 미국이 이 장비의 대중 수출을 막고 있다. 노광 장비는 반도체 기판에 미세 회로를 새기는 핵심 생산 설비다. 여기에 SMIC가 미세 공정 개발을 위해 거액 연봉을 주고 스카우트한 장상이 전 부회장 등 대만 TSMC 출신 고위 기술 인력 3명도 지난 11월 줄줄이 사퇴했다. 현재로서는 삼성전자, TSMC 등 첨단 기업을 추격할 길이 요원해진 것이다.

SMIC는 작년 말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됐다. 미국이 28나노 제품 생산 장비로 제재 범위를 넓히기 전에 최대한 공장을 증설해 두자는 게 SMIC의 전략으로 보인다.

 

시진핑 “기술 돌파” 주문했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8년4월 우한에 있는 칭화유니그룹 산하 메모리 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반도체는 제조업의 심장으로, 심장이 약하면 아무리 덩치가 커도 강하다 할 수 없다”면서 “반도체 분야에서 중대 돌파를 이뤄내 세계 메모리 반도체 기술의 최고봉에 올라서라”고 주문했다. 당시 국유 통신 장비 업체 ZTE가 ‘이란과 북한에 미국 부품이 들어간 첨단 제품을 팔았다’는 이유로 거액의 벌금을 내고 반도체 칩 공급 중단 압박을 받자 반도체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선봉장은 칭화대 산하 국유 기업인 칭화유니그룹이었다. 이 회사 자오웨이궈 회장은 총규모가 490억 달러에 이르는 국가반도체대기금의 지원을 바탕으로 국내외 반도체 기업을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한때 미국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을 230억달러에 사겠다고 제안했고,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를 인수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국내외 기술 기업 인수·합병을 통해 부족한 기술력을 단기간에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런 호언장담이 오히려 미국의 경계심을 자극해 해외 기업 인수 시도가 줄줄이 막혔다. 중국 국내 기업을 중심으로 20여 업체를 사들이는 데 성공했지만, 세계 일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칭화유니그룹은 인수·합병 과정에서 쌓인 과도한 부채로 올 7월 파산 절차에 들어갔고, 다른 국유 기업 컨소시엄에 소유권이 넘어갔다. 지방정부 차원에서 추진한 우한 홍신반도체, 지난의 촨신반도체 등도 올 상반기 손실만 수조원 남긴 채 줄줄이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시 주석이 첨단 반도체 분야 자립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가반도체대기금 지원을 받는 SMIC가 구세대 기술인 28나노급 생산 라인 구축에 주력하는 것 자체가 노선 전환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시 주석이 칭화유니그룹을 구제하지 않고 파산시킨 것 역시 의외의 선택이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시 주석의 강력한 정치적 의지와 대규모 정부 자금 지원, 국내 기업가들의 열정에도 중국은 반도체 기술 자립의 길에서 점점 멀어지는 냉엄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고 썼다.

 

“반도체 돈 쏟아붓는다고 되는 업종 아냐”

전문가들은 기초 과학기술 분야의 축적과 핵심 인재 양성 없이 자금만 쏟아붓는 전략이 한계에 부딪힌 것으로 본다. 대만 과기부 산하 과학기술산업정보실(iKnow)는 지난 9월 보고서에서 “반도체 기술 발전을 위해서는 인재와 자금은 물론 장기간에 걸친 기술 축적이 필요하다”면서 “중국이 독자적으로 반도체 제조 기술을 확보하려고 한다면 10년을 매달려도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도 중국 언론 인터뷰에서 “반도체 분야는 돈만 쏟아부으면 되는 업종이 아니다”라면서 “돈이 아니라 수학자, 물리학자, 화학자 등 창의적 인재를 쏟아부어야 한다”고 했다. 중국은 반도체 업계 종사 인력이 50만명 안팎이지만, 여전히 30만명가량이 부족하다는 게 중국 업계의 평가다. 또 반도체 분야 인력도 첨단 제품 생산 경험이 부족해 고급 인력은 모두 대만에서 수혈하고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반도체는 액정표시장치(LCD)와 달리 공정이 200여 개에 이르기 때문에 인력 몇 명 스카우트한다고 쉽게 따라잡을 수가 없다”며 “미국의 제재로 당분간은 첨단 공정 도전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中 작년 반도체 수입 3500억 달러로 원유의 두배

중국이 반도체 분야 독립에 고심하는 것은 해마다 수천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를 수입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의 지난해 반도체 수입액은 3500억달러(약 416조원)로 단일 품목으로 1위를 차지했다. 2019년에 비해 14.4% 늘었다. 둘째로 많은 원유(1763억달러)의 2배에 이르는 금액이고, 3위인 철광석(1189억달러)과 비교하면 3배 수준이다. 전체 수입액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율은 17%나 된다.

반도체는 2015년 원유 수입액을 앞지른 이후 6년째 수입 1위 품목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 1위 제조업 국가이다 보니 제조업 경기가 좋을수록 반도체 수입이 늘어나는 양상이다.

중국 정부가 2014년 ‘반도체 산업 발전 추진 요강’을 발표하고 1차로 200억달러 규모의 국가반도체대기금을 조성한 것은 반도체 수입을 최대한 줄이고 국산으로 대체하겠다는 의도였다. 2015년에는 반도체 산업을 포함한 첨단 산업을 육성하는 방안을 담은 ‘중국제조 2025′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중국 제조 2025′ 프로젝트에는 반도체 자급률을 2020년 40%, 2025년 7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담았다. 하지만 6년이 지난 지금도 반도체 수입 규모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 IC인사이트에 따르면 작년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15.9%에 그쳤다. 목표인 40%에 크게 못 미쳤다. 중국에 생산 기지가 있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대만 TSMC 등이 만든 물량을 제외한 순수 중국 업체 비율은 5.8%에 불과하다.

IC인사이트는 2025년에도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이 19.4%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실적으로 목표(70%) 달성이 어렵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