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비호감 대통령’ 뽑을 수밖에 없다면
입력 2021.11.01 03:20
이번 대통령 선거는 특이하다. 여당은 이미 대통령 후보를 선출했고 야당도 이번 주 후보를 확정하지만, 이 시점에도 유권자들은 딱히 어느 곳으로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예전과 달리 후보자들이 유권자를 끌어들이는 힘 자체가 매우 약하다. 김영삼, 김대중은 물론 이회창, 노무현, 박근혜, 그리고 문재인도 모두 열렬 지지층을 갖고 있었다. 이번에는 오히려 주요 후보들에게 느끼는 비호감도가 누구랄 것 없이 다 높다.
투표에 쓰이는 기표도장/뉴시스
이로 인해 선거는 사실상 진영 간의 다툼이 되었다. ‘어느 후보가 더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저쪽’이 이기게 둘 수 없으니 ‘우리’가 뭉쳐야 한다는 논리가 투표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우리 편’이면 눈에 들보가 들어있어도 다 용서가 되고, ‘저쪽 편’이면 티끌조차도 용납할 수 없는 정파적 편향 속에서, 정책 논쟁이나 후보 역량에 대한 평가는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다. 정책 대결은커녕 고소, 고발과 극심한 네거티브 캠페인만으로 선거전이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후보자들의 언행이 불안감을 더하고 있다. 이재명 후보의 일산대교 통행 무료화, 음식점 총량제 발언은 포퓰리즘에 능하다는 인상을 주고, 거기에 대장동 사건을 보면서는 혹시라도 부패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윤석열 후보의 잇단 설화(舌禍)는 준비가 안 된 후보라는 인상을 주고 있고 현 정권 반대의 상징이라는 것을 넘어서는 미래지향적 비전을 갖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더욱이 이 두 후보는 중앙 정치의 경험도 없다. 홍준표 후보 역시 안정감을 주지 못하기는 마찬가지고, 그나마 합리적인 듯이 보이는 두 후보는 별로 주목받지 못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들 가운데서 누군가는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제왕적’이라고 할 정도로 권력이 집중된 우리의 대통령제에서 이들이 과연 그 직을 감당할 수 있을지 확신이 잘 서지 않는다. 이번 선거는 현행 대통령제를 지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우리 사회에 던져 주고 있다. 분권적인 형태의 통치 시스템으로 바꾸기 위한 개헌이 선거 과정에서 중요한 공약으로 제시되어야 하고 차기 대통령 재임 중에는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
어쨌든 그건 나중의 일이고 이번 선거에서는 누군가를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 후보자에 대한 불안감을 그나마 줄일 수 있는 한 방안은 ‘팀(team)으로서의 대통령’을 확인하는 것이다.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자신을 도와서 주요 정책을 책임질 담당자를 미리 밝히라는 것이다. 영국과 같은 내각제 국가에서는 정당이 예비내각(shadow cabinet)을 구성하고 총선에 임한다. 집권하면 경제장관은 누구, 국방장관은 누구, 문화장관은 누구 하는 식으로 주요 정책의 담당자를 선거 전 정당이 미리 제시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유권자들은 그 정당의 공약뿐 아니라 국정을 담당할 ‘팀’을 보고 투표 결정을 할 수 있다. 후보자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유권자가 많은 만큼 자신의 예비내각을 제시해서 유능함을 보이고 유권자의 신뢰를 얻으라는 것이다. 어느 자리에 누구를 쓰겠다고까지 미리 확정해 말할 수는 없겠지만 주요 정책 공약을 누가 책임지고 있는지는 밝힐 수 있을 것이다. ‘팀으로서의 대통령’을 보여주는 것은 후보자의 역량을 간접적으로 가늠하게 하고 또 집권 후의 정책 방향을 짐작하게 해 줄 것이다.
이것은 선거 캠프 중심의 국정 운영이라는 최근 한국 정치의 문제점과 관련해서도 의미’가 있다. 후보자의 선거 캠프 인사들은 청와대 비서실을 비롯하여 요직을 차지함으로써 당선 후 집권의 중추 세력이 되어 왔다. 선거 캠프가 사실상 후보자의 예비 내각처럼 활동해 왔다. 그러나 정당과 달리 선거 캠프는 후보자와의 개인적 관계에 의존하고 있어서, 미리 검증할 수도 없고 또 정치적 책임성을 묻기도 어렵다. 차기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인물들을 밝히는 것은 후보자 개인에 대한 불안감을 보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차기 정부 국정 운영의 예측 가능성과 책임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그것은 대통령이 된다면 혼자서 모든 일을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과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제헌헌법에서 ‘합의체 의결기관’으로 만들어 둔 국무회의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의 통치를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팀으로서의 대통령’은 그 취지에도 부합한다.
얼마 전 노태우 전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87년 체제의 주역들인 ‘1노 3김’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 시대적으로, 상황적으로 새로운 통치 형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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