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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의 어떤 시] [37] 새로운 길

최만섭 2021. 9. 13. 04:52

[최영미의 어떤 시] [37] 새로운 길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입력 2021.09.13 00:00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윤동주(1917∼1945)

일러스트=양진경

지하철역 스크린 도어에 새겨진 ‘새로운 길’을 읽으며 나는 빙긋 웃었다. 지금은 보기 힘든 평화로운 농촌 풍경. 내를 건너 고개를 넘어 민들레와 까치를 지나 “아가씨가 지나고”에서 나는 멈추었다. 아가씨가 없으면 고요하고 심심한 전원시인데 아가씨가 들어가서 시가 살았다. 속도감 있는 시행의 배치도 세련되었다. 이처럼 단순한 시를 쓰고 다듬으며 시인이 느꼈을 기쁨이 내게 전해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를 위로하는 건 자연.

원본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에 실린 거의 모든 시에 날짜가 붙어 있다. 윤동주는 18세 무렵부터 자신이 지은 시에 날짜를 적어 보관하였다. 연희전문에 입학해 기숙사 생활을 하던 1938년 5월 10일에 ‘새로운 길’을 썼다. 최현배의 조선어 강의와 손진태 교수의 역사 강의를 들으며 민족문화의 소중함을 확인하던 흔적이 시에 배어 있다. 우리말, 우리 강산에 대한 애정. 외래어가 한 자도 들어가지 않고 순수한 우리말로 지은 시가 이렇게 아름답다.

#최영미의 어떤 시#읽어주는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