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의 언론법 우려, 의원들과 공유해달라” 요청 뭉갠 與
유엔 인권사무소 공문 공개 “한국 언론법 완전히 균형 잃어”
입력 2021.09.01 22:35
유엔 인권최고사무소(OHCHR)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과 관련해 “완전히 균형을 잃었다”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할 수 있다”는 등의 강한 표현을 쓰며 우려를 표한 것으로 확인됐다. OHCHR은 언론중재법에 대한 유엔의 우려를 “국회의원들과 공유해줄 것을 정중히 촉구한다”고 요구했지만, 이 법을 밀어붙이고 있는 민주당은 아직 해당 공문을 의원들에게 회람시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 인권최고사무소(OHCHR)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과 관련해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할 수 있다”는 등의 강한 표현을 쓰며 우려를 표하는 내용이 담긴 공문(오른쪽). 왼쪽은 이 공문을 작성해 발송한 OHCHR의 칸 특별보고관. /유엔
OHCHR은 지난달 27일 작성한 이 공문을 1일 오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이례적으로 신속한 대응을 보인 것으로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주의 이슈에 국제사회의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나왔다. 아이린 칸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공문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제인권규약을 위배할 소지가 있다면서 “국제적 인권 기준에 맞도록 수정하라”고 한국 정부에 촉구했다. 칸 특별보고관은 “한국 정부의 의도는 ‘언론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구축하려는 것’이지만, 수정 없이 입법되면 정반대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추가 수정 없이 그대로 통과될 경우 정보의 자유와 언론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할 수 있다”고 했다. 방글라데시 출신인 칸 특별보고관은 1980년부터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 일했고, 아시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2001년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을 지냈다.
칸 특별보고관은 공문에서 언론중재법의 문제점을 적법성 필요성 비례성 측면으로 나눠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는 “표현과 정보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은 반드시 그 범위와 의미·효과가 명확하고 정확하며 공개적이어야 한다”며 현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당국에 과도한 재량을 부여해 자의적 이행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독소 조항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관련해서는 “완전히 균형을 잃었다”면서, “언론의 자기 검열로 귀결되고 공익적 문제에 대한 중요한 토론을 억압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칸 특별보고관은 특히 공문에서 고의·중과실 추정 요건과 적용 예외 대상을 정리한 언론중재법 30조 2항의 문안이 “매우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와 정치 지도자·공인에 대한 비판, 소수 의견 표명 등을 제한할지도 모른다”면서 “정보에 대한 접근과 자유로운 아이디어 흐름이 특히 중요한 시점인 2022년 3월 차기 대선을 앞두고 이런 우려가 특히 고조되고 있다”고 했다. 언론중재법으로 인한 미디어 환경 변화가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칸 특별보고관은 공문 하단에서 “상술한 의견·우려를 법안에 투표하게 될 의회 멤버들과 공유해줄 것을 정중히 촉구한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민주당 의원들에게도 공문이 공식적으로 공유되지는 않았다. 민주당에서 당직을 맡고 있는 한 의원은 “어차피 여야가 협의를 이어가기로 한 상황이라 차차 회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OHCHR에 60일 내에 답변을 보내야 한다. 다만 청와대는 유엔의 이번 대응에 상당한 무게를 두고 접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 관계자는 “지난달 30일 여야 협상이 긴박하게 돌아가던 상황에 청와대에서도 이 공문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자칫 국제사회에서 망신을 당할 수도 있는 문제라고 보는 것”이라고 했다.
OHCHR이 이번 사안을 긴급하게 다룬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앞서 국내 인권 단체 등이 북한 선원 강제 북송 사건과 김여정발(發) 대북전단금지법 문제 등으로 유엔에 진정서를 보냈을 때는 서한을 받기까지 60일 안팎이 걸렸다. 전환기정의워킹그룹 이영환 대표는 “공문 내용이 명확하게 언론중재법에 대한 우려와 반대 의사를 담고 있고, 이런 속도와 방향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라며 “과거 사례를 봐도 비슷한 취지의 공문을 받은 나라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방송학회 역대 회장단 중 13명도 이날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해 “자유롭고 성역 없는 의혹 제기를 통한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을 현저히 위축시킬 수 있는 독소 조항”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을 쉽게 옥죌 수 있는 모호한 용어 적용과 언론사 스스로 진실된 보도임을 입증해야 하는 입증 책임 구조로 인해 언론의 의혹 제기를 치명적으로 위축시킬 것”이라며 개정 시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용수 기자
김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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