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흑석’의 시대에 ‘백석’의 절필을 생각한다
시대의 광풍에 휩쓸려
자기를 속이고 검열하는 글을 쓸 바에야
수수하고 슴슴하며 고담한
냉면 한 그릇 들이켠 뒤 붓을 꺾는 것이 낫다
입력 2021.08.30 03:20
8월 18일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언론중재법) 심의를 위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에 참석한 김의겸 의원./국회사진기자단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에는 푹푹 눈이 나린다’고 노래한 시인 백석(1912~1996)은 조선일보 기자였다. 외모며 취향이 신식이라 모던보이, 경성의 멋쟁이로 불렸다. 동료 기자 김기림은 “완두빛 더블부레스트를 젖히고 검은 머리의 웨이브를 휘날리며 광화문통 네거리를 건너가는 한 청년의 풍채는 그 주위를 몽파르나스로 환각시킨다”고 백석을 묘사했다.
그러나 백석의 시는 세련되고 도회적인 그의 외양과는 정반대였다. 첫 시집 ‘사슴’부터 파격이었다. 아배, 곱새담, 나줏손, 당콩, 바위섶, 울파주 등 평안도 방언과 고어, 민속과 풍물이 총출동한 그의 시는 “서구 모더니즘의 모방과 유행에 허덕이던 시단에 던져진 한 개의 포탄”이었다. “조상도 일가친척도 정다운 이웃도 그리운 것도 우러르는 것도 자랑도 힘도 없던” 식민지 조선이 몰락해가던 1930년대 중반, 백석은 가뭇없이 사라져가던 모어(母語)들, 그 생명의 본원과도 같은 언어들을 집요하게 퍼 올리며 일제에 맞섰다.
1937년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던 때의 시인 백석/조선일보 DB
착한 아내와 두메에서 농사지으며 책이나 읽고 살기를 꿈꿨던 그의 인생이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한 건, 정작 해방 이후다. 만주를 유랑하다 고향 정주로 돌아온 백석은 인민이 주인 되는 민주공화국이 도래할 거란 희망에 부풀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항일 혁명 문학, 유일사상에 근거한 주체 문학을 숭배하는 체제에서 그의 시는 애상 따위에 젖은 퇴폐적이고 반인민적인 적폐였다. 그렇다고 구호나 제창하는 시는 쓸 수 없어 번역과 동화시로 도피하지만, 정치적 사상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양강도 삼수군 협동농장으로 추방당한다. 결국 백석은 살아 남기 위해 체제 옹호 시를 써야 했다. ‘앞바다에 기여든 원쑤를 치러, 어든 밤, 거친 바다로, 배를 저어갔다는 늙은 전사’를 칭송하고, ‘둘레둘레 둘려놓인 공동 식탁 우에 한없이 아름다운 공산주의의 노을이 비낀다’고 노래하며, “그이(수령)는 우리들의 청춘,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목숨, 우리들의 력사였”다고 드높인다. 자신의 시 세계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이 시를 마지막으로 백석은 절필한다.
백석을 읽다 흑석을 떠올린 건 지난 25일 새벽, 언론중재법이 날치기로 국회 법사위를 통과하던 날이다. 이 정권 대변인을 지낸 이가 야당 의원으로 둔갑해 조정위원회를 무력화시키고, 세계 시민사회와 언론단체들이 반민주 악법이라 규탄하는 법을 본회의로 밀어 올렸을 때, 국민은 부동산 투기로 몰락한 ‘흑석 선생 김의겸’의 화려한 부활을 보았다. 기세 등등해진 그가 언론 보도를 오염 물질에 비유하며 “언론이 우리 사회 갈등 분열을 조장하고 극단의 대립을 부추겨 사회 전체적으로 손실을 감당하는 것과 비교하면 (벌금 하한가) 1000만원이 많은 것도 아니다” 겁박할 땐, 백석의 시를 부르주아 잔재라 맹폭하며 “우리 문학은 혁명의 문학, 특히 조국 통일 위업에 복무하는 문학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윽박지르던 북쪽의 완장 찬 문인들이 겹쳤다.
김의겸도 처음엔 순박하고 건실한 기자였을 것이다. 그가 민족 자주 통일과 파쇼 헌법 철폐를 외치다 합류한 신문사는 창간사에서 언론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의 방종과 부패를 막고 국민의 권리를 신장하겠다고 선언했었다. 2016년 ‘K스포츠 이사장은 최순실 단골 마사지 센터장’이란 제목의 특종 보도를 했을 땐 김의겸 스스로 “언론은 가만히 있는 것 자체가 공범자”라고 했다. 그랬던 그가 군부 독재의 긴급조치권, 언론 기본법이나 다름없는 악법을 관철해 파시즘으로 가는 지옥문을 열고 있으니 이 무슨 희대의 비극인가.
6·25 전쟁 직후 백석이 숙청되기까지의 삶을 그린 김연수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에는 작품 총화 회의에서 비판받고 괴로워하는 백석에게 친구 허준이 충고하는 대목이 나온다. “결국 사람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 시바이(연극, 속임수)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이런 세상에서는 글을 쓴다는 것도 마찬가지야. 자기를 속일 수 있다면 글을 쓰면 되는 거지.”
시대의 광풍에 휩쓸려 낙엽처럼 뒹굴 바에야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외치며 산골로 가야 한다. 끝내 절필하고 잊혀진 백석처럼, 자기를 속이고 검열하는 글을 쓸 바에야 붓을 꺾고 시원한 냉면 한 그릇 들이켜는 것이 낫다. 붉은 지옥에 들기 전 백석이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 이 그지없고 고담하고 소박한 것”이라고 노래한 국수 한 그릇!
백석이 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정현웅이 삽화를 그려넣었다.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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