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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朝鮮칼럼 The Column] ‘강한 국가’의 굴레를 넘어서

by 최만섭 2021.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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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강한 국가’의 굴레를 넘어서

상품·서비스·문화 모두 민간이 혁신 주도하는데
규제·통제·관치 위주 ‘강한 국가’ 사고방식 여전
사회 잠재 역량 극대화 위해 국가 기구 조직과 역할 재설정 고민할 때 됐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입력 2021.08.09 03:20

 

 

 

 

 

각 정당의 대선 경선이 본격화되면서 후보들이 많은 말을 쏟아내고 있지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오만과 무능에 지친 이들이 많다고 해도, 어차피 새 정부가 들어서면 현 정부는 극복하거나 벗어나야 할 과거가 될 것이다. 지금 국민이 듣고 싶은 건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잘못했다는 걸 다시 확인받고 싶은 게 아니라. 그래서 뭘 새롭게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제껏 이뤄진 논의에서는, 대중의 주목을 끌기 위한 자극적인 언술 말고, 우리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찾아보기 어렵다.

총 길이가 3.6㎞에 달하는 정부세종청사. 세종청사 옥상공원은 가장 큰 옥상정원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조선일보DB

무엇보다 국가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얼마 전 국민의 힘 이준석 대표가 여성가족부와 통일부 폐지론을 제기했지만, 일을 제대로 못해 없애야 한다면 부동산을 이 꼴로 만든 국토부부터 폐지해야 할 터이다. 이제는 보다 본질적으로 국가의 역할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 되었다.

이런 지적을 하면 으레 나오는 말이 ‘큰 정부, 작은 정부’에 대한 것이다. 진보는 큰 정부, 보수는 작은 정부를 선호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런 이분법은 의미가 없다.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언제나 ‘강한 국가’만이 존재했다. 해방 후 남겨놓은 일제의 통치 구조가 폭력적이었고, 그 위에 권위주의 체제를 위한 강압적 통치 기제가 더해졌다. 공안 조직 등 강화된 억압 기구는 전쟁과 뒤이은 냉전을 거치면서 반공 이데올로기를 통해 정당화되었다. 또 국가가 경제개발을 계획하고 추진한 발전국가의 시기를 겪으면서 국가는 사회 전 영역을 압도했다. 사실 그 당시는 민간보다 공공 영역이 더 효율적이기도 했다. 군대만 하더라도 수많은 장교들이 미국으로 연수를 다녀왔고 미군의 선진 시스템이 일찍부터 우리 군에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민간 영역이 국가보다 더 유능하고 효율적이 되었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우리 기업들의 각종 상품이나 서비스, 그리고 K문화 모두 민간 영역의 창의력과 노력의 산물이다. 외국에서도 신기술, 신산업 등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혁신은 민간 영역에서 주도하고 있다. 상황은 이렇게 변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강한 국가’ 속에 살고 있다. 유연하지 않고 개방적이지도 않은 보수적 관료들이 규제 위에 올라타 있고, 고위 관료의 낙하산이나 관치 금융의 문제도 바뀌지 않았다. ‘제왕적’이라는 대통령의 그늘 속에 관료 집단은 민간 영역을 통제하고 압도하는 ‘강한 국가’로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는 민주화 이후에도 국가 우위, 국가 주도라는 ‘옛날식 발전국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집값을 ‘때려잡겠다’는 부동산 정책이야말로 규제와 강압이라는 ‘강한 국가’적 사고를 잘 드러내 보이는 사례이다. 이 정책의 참담한 실패가 보여주듯, 오늘날 국가는 전지전능하지 않고 과거만큼 유능하거나 효율적이지도 않다. 현실은 ‘때려잡을’ 수 없게 되었지만 인식은 지체된 상태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변화된 세상에 맞게 국가의 구조와 역할을 재설정해야 하는 건 우리 사회의 재도약을 위해 필수적 과제가 되었다. 예컨대 교육자치로 교육청이 해당 지역의 초·중·고 교육을 담당하게 되었고, 국가교육위원회까지 만든 상황에 교육부가 지금 그대로의 권한과 기능을 유지해야 하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감염병이 주기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복지의 기능과 보건의 기능이 한데 묶여 있어야 하는지도 고민해 봐야 한다. 기획과 재정 기능이 한데 묶여 있어야 하는지,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이 몰려 있는 상황에서 국토부가 계속해서 수도권 신도시를 만들어 내야 하는지, LH 사건에서 보듯이,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은 애당초 설립되었을 때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기존의 틀을 그대로 둔 채 이런 국가 기구를 활용해서 무엇을 하겠다고 나서는 후보들의 공약은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그 중에는 탈원전처럼 애당초부터 실현되기 어려운 공약도 있고, 또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 낼 공약도 있을 것이다. 무작정 뭘 하겠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 할 수 없는 일을 가려내고, 또 고칠 건 고치겠다고 하는 것이 설득력 있고 신뢰를 주는 약속이다. 그저 정부 부처 조직을 뜯어고치라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정부의 역할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가가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건 과신이고 지난 시대의 신화이다. 우리 사회의 잠재적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국가 기구의 역할과 조직을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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