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있는 세계사] "콜로세움이 서 있는 한 로마도 서 있으리라"
입력 : 2021.07.07 03:30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와 콜로세움
▲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원형경기장 ‘콜로세움’. /펙셀스
지난달 26일(현지 시각)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의 지하 공간이 완전히 개방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어요. 검투사 대기소, 맹수 우리, 통로가 미로처럼 얽혀 있던 이 공간은 2018년부터 복원 작업이 진행됐는데, 전체가 완전히 대중에 공개된 것은 사상 처음이라고 합니다.
2000년 전 검투사와 맹수들이 싸움을 벌이고 로마 시민 수만 명의 함성이 울려 퍼지던 원형경기장 콜로세움. 로마 제국의 뛰어난 기술력뿐 아니라 정치·사회적 위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물로 꼽혀요. 8세기 영국의 성직자 베다는 "콜로세움이 서 있는 한 로마도 서 있으리라. 콜로세움이 무너지는 날이면 로마도 무너지리라. 로마가 무너지는 날이면 이 세상도 무너지리니"라고 했을 정도지요. 코로나 이전엔 매년 수백만 관광객이 콜로세움을 찾았어요.
평민 출신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정치 한 수
폭군이었던 로마의 네로(재위 54~68년) 황제가 군대의 반란에 직면해 68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이후 1년간 누가 새 황제가 될 것인지를 둘러싸고 귀족들 간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세 명의 황제가 교체된 끝에 베스파시아누스(재위 69~79년)가 60세에 황제 자리에 올랐어요.
베스파시아누스는 이전 황제들과 달리 황족도 귀족도 아닌 평민 기사 계급 출신이었어요. 그는 군 장교로 북아프리카·이집트 등 여러 곳에 파견돼 공적을 쌓다 네로 황제로부터 유대인 반란을 진압하는 총사령관으로 임명받았어요. 이후 내전으로 로마가 극도로 혼란스러워지자 로마 동쪽 방어선을 맡고 있던 동방군 등이 베스파시아누스를 황제로 추대하죠.
새 황제의 과제는 내전으로 황폐해진 로마를 재건하는 것이었어요. 이를 위해 베스파시아누스는 '콜로세움' 건설을 추진합니다. 위치부터 남달랐어요. 로마 한복판에 있던 네로 황제의 '황금궁전' 자리였죠. 네로 황제는 64년 대화재로 궁전이 타버리자 화려한 황금궁전을 지었어요. 베스파시아누스는 황금궁전 내 인공 호수 터에 콜로세움을 지었는데, 네로의 폭정에 지친 시민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전임자와 자신을 차별화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72년 콜로세움 건설을 시작했지만, 2층까지 지어진 것을 보고 79년 사망했어요. 콜로세움은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가 80년 완공했어요. 이후 그의 동생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82년 4층으로 개축했어요. 네로와 세 황제 시절을 거치며 국고가 바닥난 상황에서 어떻게 10년이란 짧은 기간 대규모 건설이 가능했을까요? 바로 유대인 반란을 진압하고 가져온 전리품과 유대인 포로를 노동력으로 쓴 덕분이에요. 콜로세움의 원래 이름은 '플라비우스 원형경기장'인데,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일가 이름을 딴 것입니다. 콜로세움으로 불리게 된 건 경기장 옆 네로 황제의 금박 동상 '콜로서스(Colossus)'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이 있어요.
2000년 전 로마인 기술의 집약체
콜로세움은 지하 2층~지상 4층짜리 건물로, 높이 50m, 둘레 527m, 총면적 24만㎡에 이르는 대규모였어요. 당시 로마인들의 뛰어난 건축 기술을 보여주는 집약체였죠. 아치형 구조를 쌓아 만들었고, 석회 반죽에 화산재를 섞은 콘크리트를 사용해 견고했어요. 또 1층 도리아식, 2층 이오니아식, 3층 코린트식 기둥 등 층마다 다른 건축 양식을 사용했고, 맨 꼭대기엔 수백 개 봉을 설치해 천막을 달아 거대한 해 가리개를 만들 수 있었어요. 검투사와 맹수가 싸우는 경기장 부분은 나무판을 모래로 덮었기 때문에 '모래'라는 뜻의 라틴어 '아레나'로 불렀어요.
타원형 경기장엔 관중이 5만~8만명이나 들어갔다고 해요. 당시 로마 인구가 100만명이었다고 하니, 상당한 규모였죠. 터널과 입구를 효과적으로 설계해 80개 입구로 관중이 모두 빠져나가는 데 20분밖에 안 걸렸어요. 시야를 최대로 확보하기 위해 좌석은 37도 경사지게 했고, 좌석 아래층으로 내려갈수록 경기를 가까이서 생생히 볼 수 있어 높은 신분이 앉았어요. 지하 공간 '히포게움'엔 검투사 대기실과 맹수 우리 등이 있었어요. 검투사와 맹수는 승강기를 타고 경기장 위로 올라와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답니다.
로마의 '빵과 서커스' 정책
로마 제국의 정책을 '빵과 서커스'라고 불러요. 국가가 시민에게 제공한 식량과 오락거리를 빗댄 말인데,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을 이르는 말로 쓰여요. 콜로세움은 '서커스용'이었습니다. 로마 황제들은 콜로세움을 통해 제국의 건재함을 대외에 알리고 시민들이 열광할 수 있는 볼거리를 제공해 황제에게 충성하도록 했어요. 시민들의 정치적 관심과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도 있었고요. 황제는 시민들의 인기를 얻으려 타조·악어·하마·표범 등 이국적인 짐승을 구해와 보여주기도 했어요.
콜로세움은 80년부터 서로마제국이 멸망(476년)한 이후 523년까지 사용됐어요. 이후 지진 등으로 파괴되고 게르만족의 약탈을 거치며 방치됐어요. 지금은 원형의 3분의 1만 남아있어요. 콜로세움 복원 작업은 1790년 보수 공사에서 시작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오줌세'
콜로세움을 지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독특한 세금 제도로도 알려져 있어요. 그는 국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조세 수입을 늘리려 했는데, 그중 '오줌세'도 있었어요. 이는 공중화장실 이용자에게 부과한 게 아니라, 공중화장실 소변을 가져가서 암모니아 성분으로 양털 기름을 제거하는 데 쓴 양모 가공업자들에게 매긴 것이에요. 이 사실이 시민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자, 아들 티투스도 반대했대요. 그러자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금화 한 줌을 아들 코앞에 들이대며 "맡아봐라. 오줌 냄새가 나느냐"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 최근 지하 공간이 대중에게 완전히 개방됐어요. /로이터 연합뉴스
정효진·양영디지털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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