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편지 600통에 묻은 억울·불안·짜증·욕망… 조선 사대부도 감정에 솔직했다 /head>
본문 바로가기
교육제도

편지 600통에 묻은 억울·불안·짜증·욕망… 조선 사대부도 감정에 솔직했다

by 최만섭 2021. 5. 24.
728x90

편지 600통에 묻은 억울·불안·짜증·욕망… 조선 사대부도 감정에 솔직했다

전경목 ‘옛 편지로 읽는 조선…’ 그동안 역사학서 다루지 않던 조선 후기 사람들의 감정 연구

유석재 기자

입력 2021.05.24 03:00

 

 

 

 

 

“구휼 후 겨우 살아남은 백성들이 또다시 보리 흉작의 재앙을 만났는데 구제할 곡식이 없습니다. 죽어 가는 것을 그 자리에서 보니 근심이 끝없고 생각하면 기가 막힙니다.”

이른바 ‘경신대기근’ 두 번째 해였던 1671년(현종 12년) 5월 27일 수원부사 이상진이 순천현감 김명열에게 보낸 편지에는 흉년과 기근 사태를 겪는 지방 수령이 백성들의 참혹한 고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공포와 슬픔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고문헌 전공인 전경목(66)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조선 후기 부안 김씨 우반종가에 전하는 간찰(편지) 600여 통을 자료로 삼아 최근 연구서 ‘옛 편지로 읽는 조선 사람의 감정’(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을 출간했다.

편지를 통해 조선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재구성한 이 연구는 한국 역사학이 인간의 ‘감정’까지 다루게 됐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전 교수는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같은 공식 역사서는 한 번 걸러진 사료(史料)로, 여기선 좀처럼 사람들의 감정을 읽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역사의 발전이 어디 이념이나 이성만으로 이뤄지던가요? ‘내가 불공정한 일을 당했다’는 억울한 ‘감정’이야말로 중요한 혁명을 촉발시킨 추동력이 되지 않았습니까.” 방대한 원(原)사료의 보고인 편지 자료를 하나하나 읽으면서, 그는 조선 사대부가 유교적 분위기 속에서 감정을 절제했다는 생각은 선입견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당시 사람들 역시 편지 속에선 자기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조선 후기 사람들의 억울함, 불안, 짜증, 욕망을 표현한 그림들. 왼쪽부터 김홍도‘서당’, '활쏘기', 신윤복‘유곽쟁웅’, 김홍도‘우물가’의 일부. /박상훈 기자·국립중앙박물관·간송미술관

그는 욕망, 슬픔, 억울함, 짜증, 공포, 불안, 뻔뻔함이라는 일곱 가지 키워드로 편지들을 분석했다. 슬픔을 꾹꾹 눌러 담아야 하는 상황에서조차 눈물 몇 방울은 끝내 감추지 못했다. 1668년 10월 평산부사 김명열은 아내의 죽음이 임박했을 때 중국으로 가는 사신 일행을 맞아야 할 처지였다. 그는 상급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제 아내의 실낱 같은 목숨이 거의 다했지만 아직 끊어지지는 않았습니다. … 방금 기절해서 (공무를 위한) 출발을 멈추고 죽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썼다.

김명열의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669년 몸이 아픈 데다 아내의 장사를 다시 치르는 일 때문에 황해감사에게 벼슬을 그만두겠다는 편지를 보냈지만, 감사는 “눕지 말고 출입하며 운동해야 병이 낫는다”며 휴가조차도 거절했다. 김명열은 “저에게 무슨 죄가 있기에 유독 사또의 인자하신 처분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까?”라며 절절한 억울함을 토로했다.

자손의 출세를 향한 집요한 욕망이 드러난 편지들도 있다. 인조반정 공신이었던 원두표는 시골 무인 출신인 김준의 서녀를 자기 아들이나 동생의 첩으로 맞기 위해 중매를 부탁하는 편지를 끈질기게 보냈다. “반드시 이 여자를 얻고자 하는 것은 안주공(김준)의 절의를 사모해 그의 후손 낳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김준은 1627년 정묘호란 때 전사해 절의를 지킨 인물로 추앙됐기 때문에 그의 외손은 출세가 보장되리라는 계산이 있었으리라고 전 교수는 분석했다.

 

유석재 기자

 

문화부에서 학술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유석재 기자의 돌발史전'과 '뉴스 속의 한국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메일은 karma@chosun.com 입니다. 언제든지 제보 바랍니다.

 

문화·라이프 많이 본 뉴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