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의 문화一流] “무너지지 않기 위해”… 죽음의 수용소에서 그들은 프루스트를 공부했다
2차대전 폴란드 전선 소련군 포로가 된 장교들
4000명→400명→79명… 처형·노역에 죽어가면서도 일과 뒤 모여 함께 공부해
입력 2021.05.10 03:00 | 수정 2021.05.10 03:00
죽음의 수용소에서 이루어진 문학 강의
- 미래가 없는 상황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존재를 확인하는가? -
제2차 세계대전의 전장들 중에서도 가장 치열했던 폴란드 전선에서, 소련군에게 포로로 잡힌 폴란드 장교들은 1939년 10월부터 하리코프 근교의 포로수용소에 수용됐다. 1940년이 되자 그들은 몇 개의 무리로 나뉘어 다시 북쪽으로 이송되었다. 처음에 4000명이었는데, 처형과 노역에 의한 죽음으로 점점 사라지고 400명이 되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의 그랴조베츠 수용소에 남은 숫자는 불과 79명이었다. 그들은 폭격으로 거의 폐허가 된 수도원 건물에 수용되어 계속 비참한 노동을 했다. 열악한 환경과 제한된 급식에다 가장 추운 계절이었다. 그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하루하루를 도살을 앞둔 가축처럼 이어갔다.
그런 그들은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아이디어를 내었다. 그들이 생각해 낸 것은 지적(知的)인 행위를 하는 것이었다. 책도 신문도 자료도 없는 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란 서로에게 강의를 해주는 것이었다. 그들은 수용소 측에 여러 번 탄원하여 일과가 끝난 후 식당에 모여 강의를 열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 물론 사전에 강의안을 만들어서 제출하여 검열을 받아야 했다. 한 교수 출신 장교는 책의 역사를, 신문사 편집장 출신은 여러 민족이 이주했던 역사를, 공대 교수는 건축사 강의를 맡았다.
그중에서 폴란드 귀족 출신으로 법학을 전공했지만 파리에 유학하여 화가가 된 유제프 차프스키(Józef Czapski·1896~1993)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강의하기로 하였다. 프랑스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1871~1922)가 14년에 걸쳐 쓴 7권 분량의 이 저명한 소설은 현대문학에서 가장 긴 소설이며 동시에 가장 훌륭한 소설로도 꼽히는 작품이다. 그것을 차프스키는 참고 서적 하나도 없는 곳에서 오직 기억에만 의존하여 강의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지적인 행위가 아닐까?
21세인 1917년 군복 차림의 유제프 차프스키(왼쪽 위)와 그가 마지막으로 수감됐던 모스크바 인근 그랴베초프 포로수용소의 1940년 무렵 모습(왼쪽 아래). 전쟁 뒤에는 작가, 화가, 예술비평가로 활동했다. 가운데 그림은 그가 그린 ‘전구가 있는 자화상’(1958). 오른쪽 사진은 차프스키의 강의 노트다. /차프스키 페스티벌 홈페이지, 풍월당
영하 45도의 혹한 속에서 종일 이어진 야외 노동으로 녹초가 된 사람들이 저녁에 모이는 것은 자신이 밥만 먹고 일만 하는 소나 말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할 필요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르크스와 레닌의 초상화가 내려다보고 있는 식당에 붙어 앉아 잠이 쏟아지는 가운데에서도 눈꺼풀에 힘을 주어 강의를 들었다. 그 시간이 그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했다. 그들에게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들을 버티게 해준 것은 생리적 욕구에만 만족하는 생물체가 아니라, 지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는 그 순간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처한 현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 정신세계와 예술을 토론하고 생각하였다. 그것만이 자신이 인간이고 살아있다는 사실을 증거해줄 수 있는, 하루 중 유일한 시간이었다. 흔히 우리는 “그것 공부해서 어디에 쓸 것이냐?”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먹고살기 위한 공부는 한 차원 아래의 공부다. 진짜 공부는 써먹을 데가 없을 때에, 쓸 데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하는 것이다. 시간이 남아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억지로 시간을 쪼개어 하는 공부다. 그들은 죽음을 앞에 두고 예술을 이야기하였다. 그 몇 분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온몸으로 깨달았을 것이다. 시키는 대로 일하며 수동적으로 살았던 스무 시간이 아니라, 남은 겨우 몇 분간에 살아있음을 느끼고 생명의 고마움을 알 수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만큼 적합한 책은 없었다. 평소에 우리는 이 책을 알면서도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너무 길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써먹을 데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시험에라도 나온다면 아무리 길어도 어떡하든지 읽어낼 것이다. 이 얼마나 위대한 아이러니인가? 죽기 직전에 인간은 문학을, 가장 지적인 인간이 남긴 정신의 소산을 알고 싶었다. 마지막 시간을 앞둔, 내일 죽을지 다음 주에 죽을지 모르는 사람들이 치열하게 정신을 깨워서 인류가 남긴 가장 예민한 감각과 지성으로 써낸 소설을 공부한다. 시간이 다한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들은 길고 긴 프루스트에 손을 내밀었다.
프루스트를 강의한 차프스키의 기억은 빠뜨린 것도 있었을 것이고 틀린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이 그의 강의의 일부다. 연기처럼 날아갈 것은 날아가고 돌처럼 가라앉을 것은 가라앉고 오직 필요한 것만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생사를 함께 가르는 마지막 동료와 전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내용만 의식의 맨 윗자리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프루스트에 관한 어떤 강의보다도 높은 가치와 감동을 주었다. 다행히도 그의 강의는 그 자리에 있었던 한 군의관의 노트로 세상에 전해졌다.
그리고 전쟁은 끝났고, 그들은 살아남았다. 그때 강의 기록은 저자의 감동적인 서문과 함께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라는 이름의 책으로 남아있다. 종전 후에 차프스키는 파리에 정착하여 폴란드 이민자들을 위한 잡지를 내고 예술비평가로 활동하였다. 차프스키는 수용소에서의 강의를 “그 시간들은 지금까지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그것을 고통이 아닌 행복으로 기억하는 것은 공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죽음 앞에서도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인간의 정신이며 예술이었다. 어쩌면 요즘과 같은 때가 가장 공부하기 좋은 시절이 아닐까.
박종호 풍월당 대표
'종교-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숨어있는 세계사] 석가족 출신 왕자가 브라만교에 맞서 창시했어요 (0) | 2021.05.19 |
---|---|
[홍성남 신부의 속풀이처방] 부활 (0) | 2021.05.14 |
포크 음악의 대모? 완두·냉이 엄마로 살아서 행복하다 (0) | 2021.05.01 |
“평생 딱 한 번 그분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0) | 2021.04.30 |
학자 추기경, 마음 주치의, 할 말 하는 교구장... 정진석 90년 삶 (0) | 2021.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