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197] 시작보다 지속
입력 2021.04.24 00:00 | 수정 2021.04.24 00:00
유독 새로운 사람을 잘 사귀는 활발한 K에게 고민이 있었다. “난 시작은 잘하는데 지속이 안 돼요.” 그의 인간관계는 넓다는 면에서는 성공이었지만, 깊다는 면에서는 실패였다. 그에게 부족한 건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능력이었다.
중년 이후 ‘사이클 마니아’가 됐다거나, 지독한 운동치였지만 ‘머슬 마니아’ 대회에 출전했다는 기사를 종종 보게 된다. 사는 게 복잡해 시작이 어려웠다는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내가 깨달은 건 그들은 ‘시작’보다 ‘지속’하는 능력이 보통 사람보다 더 뛰어났다는 것이다. 여기에 지속을 위해 덧붙여야 할 키워드가 하나 더 있다. 바로 ‘탁월함보다 꾸준함’이다.
시작보다 지속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상황을 전환하는 정신적 습관이 있다. ‘지겨움’을 ‘편안함’으로, ‘반복’을 ‘익숙함’으로 바꿔 부르는 것이다. 가령 외국어를 잘하기 위한 핵심은 반복이다. 운동 역시 그렇다. 이런 반복은 고통과 지겨움을 유발한다. 하지만 임계점을 넘으며 그것은 익숙함으로 변환된다. 반복하는 것에는 리듬이 생긴다. 그 리듬에 몸이 반응하면, 춤추거나 노래하듯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언어나 동작을 해내게 되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가치 있는 모든 일은 대개 반복을 요구한다. 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루함이 아닌 친밀함을 느끼는 건 시작보다 지속하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결혼 생활도 지겨움으로 보면 고통이지만 익숙함으로 보면 안락함이다.
중요한 건, 머슬 마니아 대회에 참여해 1등과 함께 하산하듯 운동을 멈추는 게 아니다. 꼴등이라도 그것을 지속하는 것이다. 보상 없이도 작동한다면, 그것이 습관이다. 웬디 우드 박사는 저서 ‘해빗’에서 나이키의 ‘just do it(일단 시작해라)’이 정신력에 대한 과대평가이자 자본주의의 달콤한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시작은 결코 반이 아니라는 말이다. 결심 자체를 큰 성공으로 여기게 만드는 자본주의의 힘을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되는 이유다.
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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