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확진 783명' 대만 방역 리더의 충고 “국민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주간조선]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입력 2020.12.27 05:50
photo 유민호
2020년 코로나19 방역 금메달은 어떤 나라가 차지했을까? 전 세계가 공인하는 두 나라가 떠오른다. 대만과 뉴질랜드다. 최근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2020 코로나19를 잘 극복한 나라로 대만과 뉴질랜드를 꼽았다. 두 나라는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선정하는 ‘올해의 국가’ 후보 명단에도 올랐다. 빠른 방역본부 설치와 국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기반으로 한 선진 방역의 모델 국가들이다. 반면 “K방역이 세계 표준이 됐다”고 대통령이 자랑하던 한국은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대만과 뉴질랜드는 코로나19 감염자와 사망자 수가 모두 월등히 적다. 그러나 두 나라 중 굳이 진짜 주인공을 꼽자면 대만이다. 상대적으로 땅이 넓고(2677만㏊) 인구(482만명)가 적은 뉴질랜드에 비해 여러 가지로 방역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대만은 좁은 국토(359만㏊)에다 2400만명의 인구가 밀집된 나라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환경이지만, 전염병 방역에 관련한 객관적 수치는 뉴질랜드를 압도한다. 2020년 12월 26일 현재 대만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783명이고 사망률은 0.9%이다. 뉴질랜드는 확진자 2121명, 사망률 1.2%를 기록 중이다.
대만의 성공적 방역을 거론할 때 전 세계 모두가 언급하는 인물이 두 명 있다. 타임지 ‘2020년 100인’에 선정된 차이잉원(蔡英文) 총통과, 1981년생 디지털담당 장관 오드리 탕(唐鳳)이 주인공이다. 방역의 두뇌가 차이잉원 총통이었다면 오드리 탕 장관은 손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대만 선진 방역의 하이라이트는 마스크 앱(App)이었다. 한국인이라면 2020년 초 마스크 하나를 구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당시 대만은 마스크 부족 사태의 무풍지대였다. 바이러스 확산에 앞서 마스크 재고를 늘리고, 이후 적재적소에 공급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당시 대만이 개발한 마스크 앱은 마스크 공급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모바일용 소프트웨어로, 앱을 통해 미리 주문한 상태에서 약국에서 곧바로 마스크를 받을 수 있게 한 혁명적 테크놀러지로 찬사받았다.
오드리 탕 장관은 바이러스 확산 전에 이 마스크 앱을 미리 만들어 전 국민에 배포한 인물이다. 전 세계가 마스크 앱은 물론 오드리 탕에 주목한 것은 당연하다. 2016년 35살 나이로 디지털 장관에 오른 오드리 탕의 경험과 교훈을 통해 대만 방역의 실체와 실력 그리고 미래에 대해 알아봤다. 오드리 탕 장관과의 인터뷰는 지난 12월 11일 저녁 화상을 통해 이뤄졌다.
- 12월 들어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에서 다시 벌어지고 있다. 대만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대만 국내에서의 감염자는 지난 6개월간 전무했다. 그러다 12월 재확산과 함께 국내 환자도 발생했다. 그동안 나타난 감염자는 전부 입국심사대나 국경에서였다. 따라서 최근 한층 더 중시하는 것이 국경 방역이다. 사람들이 대만으로 계속해서 돌아오고 있다. 입국자의 14일간 격리는 기본이다. 지난 6개월간 국내 감염자가 전무했다는 점에서 대만은 이미 전염병 대응 2.0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 구체적으로 현재 대만의 전염병 예방책은 어떤 것들인가.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무지개 마스크'를 쓰는 것이 방역의 첫 번째 단계다. 대만 정부는 형형색색의 무지개 마스크를 만들어 국민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마스크는 '눈에 보이는 백신'이라 볼 수 있다. 마스크는 코로나19만이 아니라 비위생적인 상대방은 물론 변형된 독감이나 사스(Sars)로부터도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다. 그러나 마스크의 가장 중요한 효용성은 자신의 손에 남아 있을지도 모를 바이러스로부터의 보호에 있다. 내가 세계의 방역 관계자 모두에게 강조하지만, 남과의 관계만이 아닌 자기 손의 바이러스를 막기 위한 제1 보호망이 마스크다."
영상 인터뷰 도중 오드리 탕 장관이 대만 국민들에게 정부가 배포하는 ‘무지개 마스크’를 들어 보이고 있다. photo 유민호
- 디지털담당 장관으로서 개발 중이거나 최근 개발된 디지털 정책 산물이 있는가.
"경제활성화를 위한 정부지원 쿠폰과 관련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대략 100달러 쿠폰을 받은 사람이 이를 전부 소비할 경우 다시 3분의 2 정도의 현금을 되돌려 받을 수 있다. 은행 ATM을 통해 어디서나 간단하고도 빠르게 이뤄지는 현금 환급이다. 현금 66달러를 되돌려 받았다고 할 때 곧바로 다른 소비에 나설 것이다. 지난 9월 실험을 거친 뒤 경제활성화를 통해 국민소득을 높일 수 있는 방안으로 이후 시행 중이다. 쿠폰을 활용한 경제성장용 디지털 도우미인 셈이다. 덕분에 지난 10월, 지난 10년 이래 최고의 국내 소비가 이뤄졌다. 국민소득 향상에 도움이 된 셈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백신을 제때 공급하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K방역의 허실이 드러나고 있다. 여태까지 비교 대상을 미국·유럽에 두면서 자랑해왔지만 정치·문화·경제적 차원에서 한국과 비슷한 아시아권 나라와 비교할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12월 26일 기준, 대만의 코로나19 관련 최종 성적표는 총감염자 783명, 사망자 7명이다. 같은 기간 한국은 어떨까? 총감염자 5만5902명, 사망자 793명이다. 대만 인구는 한국의 약 절반 정도다. 1년여에 걸친 대만의 총감염자 764명은 이미 1000명대를 넘어선 한국의 1일 신규 확진자수보다도 적다.
- 대만 방역의 결과를 보면 한마디로 놀라울 뿐이다. 마스크 하나만이 대만 방역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성공의 이유나 배경으로 어떤 것이 있는가.
"대만의 비교 대상은 남극이다.(웃음) 펭귄이 살고 있는 남극에는 바이러스가 전혀 없다고 한다. 내 생각에 한국도 잘하고 있다고 본다. 대만의 경우를 보자면, 우리는 이미 특별한 경험을 하나 했다. 2003년 사스1.0이 왔을 때다. 당시 대만의 대응은 아주 좋지 않았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통제나 조절이 미흡했다. 전국 병원이 의료 중단에 들어갔고, N95 마스크도 못 구하는 등 큰 난리를 겪었다. 당시의 대만과 달리 다른 나라들은 모두 잘 대처해 나갔다. 2004년 들어서면서 대만 정부는 새로운 정책 세 가지를 입안한다.
첫째, 방역중앙본부(CECC)를 신설하고 지휘체계도 하나로 통일했다. 자동전화를 통해 CECC로 누구나 곧바로 연락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했다. 두 번째는 마스크 공급이다. 비상시 마스크 전쟁을 고려하면서 1일 생산량을 200만개에서 2000만개로 대폭 늘렸다. 세 번째는 IC 카드를 통한 의료체계의 일원화와 디지털화다. 개개인의 소득수준에 맞춘 의료비가 일시에 지불될 경우 그 이후의 부담은 상당히 경감된다. 전염병에 걸렸다 해도 의료비 걱정이 없기 때문에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스스로 연락을 하거나 직접 병원에 찾아왔다. 결과적으로 감염자를 일찍 포착해서 병원 내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 지금 전 세계가 제2차 팬데믹으로 허덕이지만 대만은 거의 유일하게 전염병 광풍에서 벗어난 듯하다. 대만에 제2차 팬데믹이 벌어지지 않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코로나19 팬데믹은 남극은 물론 목성과 달에도 없다. 대만만이 예외는 아니다.(웃음) 내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30살 이상의 대만 국민이라면 사스 광풍을 통해 이미 큰 경험을 했다는 사실이다. (사스 이후) 대만은 정부 주도가 아니라 사회구성원 스스로가 해결해나가는 체제로 변신했다. 적어도 국민의 4분의 3이 마스크를 하고, 손을 자주 씻는다면 (전염병이 번져도)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마스크를 상시 착용한다면 바이러스가 간단히 퍼져나가지도 못한다. 심지어 나이트클럽이나 술집에서라도 마스크를 착용한다면 바이러스 방역이 가능하다. 마스크 착용과 개인 손 위생이 바이러스 방역의 핵심이란 사실은 전 세계의 상식이다. 대만은 경찰의 강제력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가 그런 상식을 생활화했다고 볼 수 있다."
- 지금 코로나19가 휩쓸고 있는 미국과 유럽을 향해 어떤 조언을 하고 싶은가.
"2004년, 대만은 사스1.0 기억이 선명할 때 사스2.0을 준비했다. 전염병 공포가 아직 남아 있을 때 다음을 준비해야만 한다. 기억이 희미해지면 준비를 하지 않게 된다.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을 때 제도화해서 입법화하고, 데이터를 모으고, 개인정보와의 연관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해 나가야 한다. 팬데믹이 두 번이나 오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너무도 선명하게 옛날 기억을 떠올리면서 사회 전체가 백신체제로 변해갈 것이다. 안주하지 말고 곧바로 다른 바이러스 창궐에 대비한 국가적 차원의 재정비에 나서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오드리 탕은 대만 방역의 간판인 동시에, 대만 청년들이 꿈꾸는 성공모델이기도 하다. 14살 때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19살 때 실리콘밸리로 건너가 소프트웨어회사를 차렸다. 이후 23살 때 애플의 고문으로 들어가 시리(Siri)를 포함한 고성능 인공지능 프로젝트에 관여했다. 애플과의 계약 당시 급료는 1시간에 암호화폐 1BTC(비트코인)였다. 현재 1BTC가 2만달러를 넘어섰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만을 대표하는 부호로 부상했다고 볼 수 있다.
- 정보교환이나 데이터 수집, 개인정보와 관련해 거대한 장벽 하나가 가로막고 있다. 바로 중국이다.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를 무려 4주간 숨기는 과정에서 글로벌 팬데믹 사태로 발전했다. 대만은 그런 중국과 어떤 협력관계에 있는가. "세계보건기구(WHO)가 중심이 된 코백스(COVAX·세계백신연합개발)가 양국 간의 유일한 협력체인 걸로 안다. 그 외는 내가 아는 한 없다. 2019년 말 코로나19 초기, 중국 우한에 거주하는 리웬링(李文亮) 박사는 현지 상황을 자세히 파악하고 있었다. 사실 리웬링 박사가 곧바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한 상황을 알려줬기 때문에 대만의 발 빠른 방역이 이뤄질 수 있었다. 리웬링 박사는 바이러스에 희생됐지만, 적절한 정보 덕분에 대만 국민들은 살아났다고 볼 수 있다. 대만은 리웬링 박사의 경고를 받은 바로 다음 날, WHO에 현지 상황을 보고했다. 그러나 리웬링 박사의 경고는 중국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접촉을 피할 방안을 곧바로 시행했어야 했지만, 중국 당국은 나서지 않았다. 중국이 곧바로 행동에 옮겼다면 전 세계가 약 10일 정도는 일찍 대응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대만처럼 방역전문가가 정부 핵심부서의 책임자로 일하지 않을 경우 발 빠른 대응은 어렵다."
- 현재 대만에서 백신 공급 문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이미 부분적으로 접종이 시작됐고, 전 세계 모두가 백신을 기다리고 있다. 대만은 코백스에도 참가하고 있지만 새해 4월쯤에는 자체 생산 백신도 선보일 예정이다. 현재 상황을 보면 대만은 그때까지 감염자 수를 한 자릿수로 줄여나갈 수 있을 전망이다. (다른 나라 감염 상황에 비해) 어느 정도 여유로운 상황이기에 백신 접종도 서서히 시행할 수 있다. 따라서 자체 생산한 백신을 다른 나라나 국민들에게 공급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계획은 새해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간 이뤄질 듯하다. 그러나 한 가지, 코로나19 변종이 심하게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기본전제다."
- 코로나 19와 관련한 중국 상황은 여전히 비밀스럽다. 현재 감염자가 거의 없다는 식으로 발표되는데 중국 통계를 믿는가.
"현재 나는 중국에 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황이다. 바이러스 확산 초기에 우한에 대만 방역전문가가 갔을 때 일이지만 전염자가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이후 2020년 1월 12일로 기억하지만, 우리 방역전문가 두 명이 우한에 들렀을 때는 아예 정보나 자료 자체에 대한 접근이 불가능했다. 내 생각이지만 중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숨긴다기보다 정부 관계자들이 상황 자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고 판단된다. 어떻게 돌아가는지 진짜 모르기 때문에 수수방관했다고 볼 수 있다."
- 바이러스 방역에 나서면서 체득한 교훈으로 한국 정치인과 정부 관계자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국민을 신뢰하고, 그들이 직접 사회적 개혁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길 바란다. 국민을 믿으면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향상된다. 국민들의 목소리와 아이디어에 항상 귀를 기울이고, 곧바로 현장에 활용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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