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퇴르의 나라’ 프랑스 왜 백신 불신하나
反자본주의 세력 입김 센 프랑스, ‘백신=제약사 돈벌이 수단’ 인식
“코로나 백신 맞겠다” 54%로 최저… 논란 의식한 듯 ‘백신 접종 무료’
입력 2020.12.05 03:00
코로나 백신 개발에서 앞서가고 있는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와 코로나 백신 모형./AFP 연합
장 카스텍스 프랑스 총리는 내년 1월 100만명에게 코로나 예방 백신을 접종하겠다는 계획을 3일(현지 시각) 발표하며 “백신 접종은 다른 사람을 보호하는 이타적 행동”이라고 호소했다. 프랑스에서 백신 거부 반응이 워낙 강하다는 걸 의식해 접종에 적극 동참해달라고 한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에선 백신을 맞지 않겠다는 기류가 유독 강하다. 여론조사업체 입소스와 세계경제포럼이 공동으로 지난달 주요 15국에서 백신을 맞을 의향이 있는 사람의 비율을 조사했는데, 프랑스가 54%로 꼴찌였다. 인도(87%), 중국(85%)은 물론 영국(79%), 독일(67%), 미국(64%)보다도 두드러지게 낮았다. 프랑스 전역에서 코로나로 5만4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백신 없이 버티겠다는 국민이 절반에 가깝다는 얘기다. 접종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나랏돈을 들여 전국민에게 무료 접종을 하겠다고 약속했는데도 반응이 시원치 않다. 광견병, 탄저병 등에 대한 백신을 만들어 질병을 백신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준 ‘면역의 아버지’ 루이 파스퇴르의 나라 프랑스에서 왜 이런 백신 거부 반응이 나타나고 있을까.
프랑스 백신회사 ‘사노피’ 찾아간 마크롱 - 에마뉘엘 마크롱(맨 오른쪽)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6월 프랑스 중동부 리옹 인근의 프랑스계 다국적 제약사 사노피의 연구개발 자회사인 사노피 파스퇴르 연구소를 방문해 연구진의 설명을 듣고 있다. 3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사노피는 코로나 백신 개발을 위한 임상 1·2상 결과를 이달 내로 발표한다. /AP 연합뉴스
프랑스인 중에서는 코로나 백신이 거대 제약사의 돈벌이 수단이라는 시각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 오래전부터 프랑스는 항생제와 우울증 치료제 사용이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축에 속했고, 이에 따라 제약사들이 폭리를 취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특히 2018년부터 벌어진 ‘노란 조끼’ 시위(마크롱 행정부의 정책 전반에 반발한 시위)를 벌이는 이들은 프랑스 정부가 제약업계와 결탁해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 사태가 터져 백신을 맞자고 하니 “정부가 글로벌 제약사들 돈벌이를 도와주려고 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런 부류는 반(反)자본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며,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사회주의 세력의 힘이 강한 나라이다.
주간지 주르날뒤디망슈는 “백신 거부는 극좌 또는 극우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난다”고 했다. 극좌파가 제약사에 대한 반감 때문에 싫어한다면 극우파는 백신을 정부의 통제 수단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극우들은 코로나 사태가 자유를 속박하기 위해 정부가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주장도 펼친다. 방역 거부 시위를 주도하는 이들은 극우파가 많고, 이들은 백신에 대해서도 거부 반응을 보인다.
프랑스는 정치 이념 스펙트럼이 유럽에서도 다채로운 편이며, 극우·극좌가 모두 많다. 2017년 대선 1차 투표에서 극우 후보 마린 르펜과 극좌 후보 장뤽 멜랑숑이 얻은 표를 합하면 전체 유권자의 41%에 달할 정도였다. 백신 접종을 의무화할 경우 정치적으로 곤경에 처할 수 있다고 판단한 마크롱 대통령은 일찌감치 접종을 의무화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코로나 백신 맞겠다고 응답한 비율
급하게 개발된 백신의 안전에 대해 불신을 표시하는 이들도 많다. 부작용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백신을 맞지 않겠다는 이들을 소셜 미디어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프랑스 정부가 충분한 검증이 되지 않았다며 18세 이하에게는 백신 접종을 금지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안전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키우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원래 프랑스에서는 백신 자체에 대한 신뢰가 낮았다. 2018년 갤럽이 144국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프랑스인들의 33%가 예방 접종이 안전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독일(13%), 미국(11%), 영국(9%)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이 같은 결과는 프랑스 정부의 정책적 실패가 불러온 측면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조슬린 로드 고등보건대학(EHESP) 교수는 “2009년 돼지독감 예방 백신을 정부 차원에서 대량 준비하며 야단 법석을 피웠다가 불필요한 상황이 되면서 수백만명분을 소각한 사건이 백신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키웠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일부 의료계 인사가 백신 거부 운동을 벌이는 것도 여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남부 몽펠리에에 사는 앙리 주아이외라는 외과의사가 주도하는 백신 반대 캠페인에는 수십명의 의사·약사가 동참하고 있다. 주아이외는 군비 경쟁하듯 불필요하게 각국 정부가 백신에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는데, 그의 페이스북 페이지 팔로어는 17만명이 넘는다.
백신에 대한 불신과 안전성 논란과 별개로 프랑스인들 중에서는 코로나 사태가 백신을 맞아야 할 만큼 심각한 일이 아니라고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여전히 마스크도 쓰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는 이들이 있다. 프랑스 정부는 내년 상반기 이내에 국민 대다수가 백신을 맞도록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파리에 상주하며 유럽 소식을 전하는 유럽특파원입니다. 유럽에 관심 있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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