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김광일의 입] 북한 ‘넘버2’ 김여정에게 서울·평양 벌벌떠는 이유

최만섭 2020. 6. 9. 05:13

[김광일의 입] 북한 ‘넘버2’ 김여정에게 서울·평양 벌벌떠는 이유

김광일 논설위원

 

 

입력 2020.06.08 18:00

 


북한은 형식적으로는 5개 정당이 있는 것처럼 돼 있지만, 실제로는 조선로동당 1당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조선사회민주당, 천도교청우당,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종교총회 같은 준(準)여당에 해당하는 4개 우당(友黨)이 있지만 꼭두각시 정당들일 뿐이고, 최고인민회의 의석수에 있어서 10대1 정도로 노동당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노동당 구조도 사뭇 복잡하게 되어 있는데, 핵심 권력기구만 알고 있으면 의외로 간단하게 파악할 수 있다.

당 기구에서 김정은이 위원장을 맡고 있으면 핵심 조직이고, 그렇지 않으면 보좌 조직으로 보면 된다. 핵심 조직 첫째가 당 중앙위원회다. 당의 최고 지도기관이다. 중앙위원회는 ‘위원회’이기 때문에 ‘위원장’이 있고, ‘위원’이 있는데, 다시 위원에는 상무위원, 정위원, 후보위원이 있다. 그런데 당 중앙위원회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 김정은 위원장이고, 그다음이 김여정 후보위원이다.

중앙위원회 밑에는 18개 전문부서가 있는데, 우리가 봤을 때 제일 중요한 전문부서가 조직지도부, 그다음이 선전선동부, 그다음이 통일전선부, 그리고 제39호실이 있다고 보면 된다. 조직지도부는 조선로동당의 모든 것을 틀어쥐고 있는 핵심 중의 핵심 부서다. 당 인사권, 정책권, 검열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다음이 선전선동부인데, 우리는 지금까지 김여정이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6월 4일 김여정 명의로 담화가 나왔다.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남조선 당국이 응분의 조처를 세우지 못한다면 금강산 관광 폐지에 이어 개성공업지구의 완전 철거가 될지, 북남 공동연락사무소 폐쇄가 될지, 있으나 마나 한 북남 군사합의 파기가 될지 단단히 각오는 해둬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김여정은 문재인 대통령을 ‘놈’이라고 비방하는 언사를 서슴지 않았다. 이렇게 말했다. "나는 못된 짓을 하는 놈보다 못 본 척하거나 부추기는 놈이 더 밉더라."

이 담화가 있자 우리 정보 당국은 김여정이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직함을 뛰어넘어 조직지도부, 통일전선부까지 장악하는 포괄적인 특수 지위에 오른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여정이 우리 청와대 비서실 격인 ‘김정은 서기실’에서 실장 역할을 하며 사실상 당과 군부의 대남정책을 총괄하고 조율하는 실력자가 됐다는 것이다. 김여정은 지난 3월3일에도 담화를 낸 적이 있다. 그 당시 청와대가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발사에 유감을 표명하고 중단을 촉구하자 김여정은 담화에서 "주제넘은 실없는 처사다" "청와대의 저능한 사고방식에 경악을 표한다"고 했었다. 북한에서 남조선 당국자, 다시 말해 문재인 대통령을 직간접적으로 거론하면서 성명을 발표하는 사람은 두셋밖에 안 된다.

다시 이번 사태로 돌아와서 서른두 살 김여정이 지난 4일 "못 본 척하는 놈이 더 밉더라"는 발언을 한 뒤로 서울과 평양 양쪽에서 김여정 발밑에 납작 엎드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먼저 서울 쪽에서 벌어진 ‘꼴불견’을 보겠다. 김여정 담화가 있은 지 불과 4시간 만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통일부는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어 "대북전단 중단 법률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김여정이 "법을 만들라"고 지시하자 우리 통일부가 그대로 이행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직후 청와대는 "대북 전단은 백해무익한 안보 위해 행위"라며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통일부 장관 출신인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북은 최고 존엄에 대한 도전을 묵과할 수 없다"고 했다. 또 여당 한정애 의원은 "전단 살포는 쓰레기 대량 투기 행위와 같다"고 했다. 전직 대통령 아들인 김홍걸 의원은 "(김여정의 비난은) 협박이 아니라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신호"라고 하면서 대북 전단 살포를 제한하는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반응만 놓고 본다면 여기서 서울인지 평양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그렇다면 평양은 6월 4일 이후 어떤 일이 있는가. 이튿날인 5일부터 대남 규탄 집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동신문을 비롯한 거의 모든 매체가 문재인 정부를 향해 "더러운 개무리" "철퇴로 대갈통을 부수겠다"는 막말 비난을 쏟아붓고 있다. 선전매체 ‘메아리’는 문 대통령을 향해 "무지무능한 정권"이라고 했고, ‘우리민족끼리’는 "지구상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이해도 납득도 되지 않는 달나라 타령"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을 달에 비유하면서 ‘달나라 타령’이라고 헐뜯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정부, 그리고 민주당은 북의 이러한 공세에 마치 꿀 먹은 사람처럼 아무 말도 못 한 채 오히려 탈북단체의 전단 살포만을 비난하고 있다. 여러 반응과 분석은 도대체 문재인 정부가 김여정에게 무슨 약점을 잡혔느냐 하는 점을 묻고 있다. 문 대통령 개인적으로는 북한에 이모가 살고 있고, 2004년 제10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 때 어머니를 모시고 이모를 만난 적이 있다. 그렇다고 해도 김여정의 담화 하나에 이런 일이 서울과 평양에서 납작 엎드리는 상황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것은 납득이 안 된다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이번 김여정의 담화가 거의 ‘수령님 교시’ 수준으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으며, 마치 ‘충성경쟁식’ 대남비방이 꼬리를 물고 있다. 믿을 건 오로지 피붙이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남조선 군기 잡기를 계기로 이른바 ‘백두혈통’들끼리만 권력을 나눠 갖는 혈족 통치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특히 노동당 통일전선부는 지난 5일 대변인 담화를 냈고, "남측과의 일체 접촉공간들을 완전 격폐하고 없애버리기 위한 결정적 조치들을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는데, 이때 이례적으로 김여정의 ‘지시’라는 표현까지 썼다. 북한 관영매체나 담화가 김정은 이외의 인물을 언급하며 ‘지시’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래서 김여정이 사실상 ‘2인자’로 올라섰으며, 김정은 위원장과 거의 동급에 가까운 행동을 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08/20200608031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