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몸과 마음 사이

최만섭 2018. 1. 17. 10:58

 


몸과 마음 사이

 

흔히 말하기를 행복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한다. 많은 사람이 스스로 마음을 내려놓았다고 고백을 하는데, 왜 세상은 더 삭막해지고 혼탁해지는 것일까? 강상원 박사에 의하면 범어에서 의 어원은 이며 맴은 마음(mind)과 기억(memory)을 의미한다고 한다. 따라서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실질적인 뜻은 몸이 기억하는 마음을 내려놓는다고 해석해야 타당할 것이다.

 

일전에 텔레비전에서 50대 후반 환경미화원의 이야기를 보았다. 그는 약 25년간 도로 청소일을 해왔는데, 10년 전부터 일과 후에 폐지를 모아서 판매한 돈 전액을 동사무소에 설치한 모금함에 기부해 오고 있다. 새벽 4시에서 오후 3시까지 근무를 마치고 폐지를 수집하는 약 3시간이 그에게는 더없이 행복하다. 그의 선행을 아는 지인들이 폐지와 함께 전달해 주는 덕담 때문이다.

 

기부행위를 하기 전에는 일과가 끝나면 동료나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는데, 단골 술안주 메뉴는 불평등한 세상에 대한 불만과 잘사는 사람들의 오만한 태도에 대한 불평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부정적인 말들이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여 병이 났다는 사실이다. 우울증과 무기력증이다. 항상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병원을 찾아서 작은 봉사를 실천해 보라는 의사의 충고를 받아들여 시작한 일이 그의 직업과

연관된 폐지를 수집하여 이를 기부하는 일이었다. 좋은 습관이 철학을 낳고 철학이 인생을 바꾼다. 동료들과 술 먹고 세상을 비관하는 대신에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폐품을 수집하니 몸이 건강해지고 봉사와 기부로 몸에서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과 사랑의 호르몬 옥시토신이 생성되니 자연히 만사가 편안하고 행복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삶의 자존감을 찾은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깨달은 바는 우리가 마음이라고 생각하는 실체는 망상일 뿐 마음은 아니며, 따라서 우리가 내려놓아야 하는 것도 망상이 아니라 마음이 기억하는 몸이라는 사실이다.

 

이분과 같이 10년 이상 좋은 습관이 쌓인 분은 몸의 DNA가 바뀌어서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성인의 길로 들어서게 되어있다. 불교에서는 화두가 감정화되고 가슴속 깊이 새겨져서 의식적으로 의도하지 않아도 몸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도의 길로 찾아가는 단계를 의정이라고 하는데, 이런 분은 아마도 의정의 단계에 오른 분일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행복도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좋은 습관이 몸에 쌓인 만큼 행복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가 봉사와 기부행위로서 건강과 행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부인의 이해와 협조가 있어서 가능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생활고에 시달린 상황에서 남편의 봉사나 기부행위를 이해할 부인이 얼마나 되겠는가? 부창부수(夫唱婦隨)라고 했나? 부인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