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女 선수들은 훈련 기계? 국제 기준에 맞춰 선수 키우고 훌륭한 인적 네트워크도 위력 이런 성취, 각 분야서 활용을
민학수 스포츠부 차장
올해 US여자오픈을 보면 한국의 세계 여자 골프 지배 현상이 '특이점'을 넘어섰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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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여자오픈은 전통과 상금, 열기 등 모든 면에서 여자 골프 최고 권위의 대회이다. 가장 뛰어난 선수를 골라낸다는 원칙 아래 나흘간 매홀 다른 문제를 내듯 까다롭게 코스를 조성하기 때문에 변별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다. 그런데 올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데뷔한 박성현이 우승했고, 프로 선수도 아닌 아마추어 국가대표 최혜진이 준우승을 차지한 것을 비롯해 상위 10명 중 8명이 한국 선수였다. 미국의 내셔널타이틀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미국 선수가 거둔 최고 성적은 공동 11위였다. 지난 10년간 7차례나 한국 선수가 우승했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이 아닌 다른 국적의 선수가 우승하면 '뉴스'가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1998년 박세리가 '맨발의 투혼'으로 US여자오픈 정상에 오른 이후 20년 만에 한국 여자 골프는 독보적인 존재가 됐다. 올해 LPGA투어 20개 대회 중 10개 대회를 한국 선수가 우승했고 일본에서도 활약이 이어지고 있다. 특정 프로 종목을 특정 국가 선수들이 압도하는 현상은 드물다. 미국 골프 매체 골프닷컴은 "US여자오픈에서 한국의 강세는 근대 골프에서는 매우 드문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선수에게 특혜를 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한국의 골프 환경이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 비해 열악한데도 그렇다.
박성현(왼쪽) 선수와 최혜진 선수. /AP·연합뉴스
그동안 한국 여자 골프의 강세를 설명하는 논리로는 블루오션의 발견과 골프 대디의 헌신 등이 꼽혔다. 실제로 많은 골프 대디가 어릴 때 딸의 손에 클럽을 쥐여준 이후 운전사와 매니저, 캐디 등 1인 3역 이상을 한다. 딸은 훈련에 몰두하는 시스템이다. 때론 지나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국내 기업 골프 구단 책임자는 "학원가를 누비며 오직 자식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대치동 맘'과 비슷한 것 아니냐"고 했다. 남자 골프에 비해 경쟁이 치열하지 않고 체격 조건이 뒤지지 않는 여자 골프 시장을 공략한 덕분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미국도 뛰어난 골프 환경을 바탕으로 주니어와 대학의 골프 육성 프로그램이 가동되고 있다.
미국의 베테랑 골퍼 크리스티 커는 예전부터 "한국 선수들은 하루에 10시간씩 훈련하는 기계들"이라고 했다. 프로 세계에서 상대 선수가 연습량이 많기 때문에 이길 수 없다고 주장하는 건 설득력이 없다. 오죽하면 박인비가 "한국 선수들을 기계에 비유한다면 미국 선수들을 더 좋은 기계로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을까. 최혜진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주니어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해 세계무대에서 통하는 선수로 성장하는 데 8년이 걸렸다. 이 8년에 어떤 해답이 있지 않을까?
최혜진을 키운 한국 여자 골프의 인적 네트워킹은 놀라웠다. 몇 차례 무작위 연결만으로 모든 사람과 쉽게 연결될 수 있는 네트워크를 '작은 세상 네트워크'라고 한다. 최혜진은 아마추어 국가대표 선배인 박세리에게 US여자오픈이나 LPGA투어를 어떤 마음으로 준비해야 하는지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고, 미국과 일본에서 우승 경험이 있는 강수연에게 퍼팅과 쇼트 게임을 가끔씩 배우고 있다. 주니어 시절부터 레슨을 한 안성현이나 이경훈은 골프의 최신 이론에 해박하고 경험 많은 코치들이다. 박세리 이후 세리 키즈가 등장하고 최혜진 같은 선수가 나오는 사이클이 점점 더 짧아지는 선순환 구조를 갖추게 된 것은 이런 한국 여자 골프의 풍부한 네트워크 덕분이다.
한국 선
수들, 특히 대표 선수들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훈련하고 국내외 대회에 참가한다. 대한골프협회는 주니어 시절부터 대회 코스를 미국 이상으로 어렵게 해 세계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 선수를 기른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세계 무대에 눈높이를 맞춘 여자 골프가 지난 20년 동안 이룬 성취의 비결은 곳곳에서 정체 현상을 빚는 한국 사회에도 좋은 자극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