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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장로가 함께 의사 결정… 교회에 代議민주주의를 도입하다

최만섭 2017. 1. 11. 08:02

목사·장로가 함께 의사 결정… 교회에 代議민주주의를 도입하다

  • 에든버러(영국)=박경수 장로회신학대 교수·종교개혁사 전공

입력 : 2017.01.11 03:04

[인물로 보는 종교개혁 500주년] [3·끝] 존 녹스

왕 따라 종교박해 벌어지던 시대… 갤리선 노예·망명… 험난한 인생

칼뱅과 제네바 종교개혁 이끌고 1560년 스코틀랜드에 첫 장로교
한국 개신교 주류 장로교의 뿌리

한 사람이 바로 섰을 때 스코틀랜드의 교회가 달라졌고, 세계 역사가 변화되었다. 지난해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가 존 녹스(1513년경~1572년)의 고향과 망명지, 목회지를 돌아보면서 그의 개혁이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임을 목격했다.

존 녹스가 활동하던 시기,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격변기였다. 헨리 8세가 이혼 문제 등으로 교황청과 충돌해 파문된 후 영국에도 프로테스탄트 물결이 일었다. 그러나 왕이 바뀔 때마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번갈아 박해받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프랑스까지 스코틀랜드 왕위 계승 문제에 개입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해 전투를 벌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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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녹스(오른쪽)가 손을 흔들며 설교하는 모습을 담은 에든버러 성 자일스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 녹스는 이 교회에서 1559년부터 1572년까지 설교하면서 장로교회의 전통을 세웠다. 왼쪽 사진은 장로교회를 세운 종교개혁가 존 녹스의 동상. /박경수 교수
존 녹스가 어떻게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받아들였는지 분명하진 않지만, 그가 세인트앤드루스에서 학생으로 있을 때 패트릭 해밀턴(Hamilton)과 조지 위샤트(Wishart)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운동을 벌인 해밀턴과 위샤트는 각각 1528년, 1546년 화형(火刑)당했다. 녹스는 위샤트의 경호원이자 추종자였다. 1547년 7월 녹스는 프랑스 군대와의 전투에서 포로가 돼 갤리선에서 19개월 동안 노예 생활을 하고 잉글랜드로 귀환했다.

잉글랜드에서의 삶도 평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녹스는 스스로 '하나님의 나팔수'로 여겼다. 그는 가톨릭 신자인 잉글랜드의 여왕 메리(Mary of Tudor),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Mary of Scotland) 앞에서도 당당하게 개혁의 나팔을 불었다. 이로 인해 1554년 이번엔 망명자가 돼 프랑크푸르트와 제네바 등을 떠도는 신세가 됐지만 누구도 이 나팔수를 막을 수 없었다. 녹스는 1556~1559년 제네바의 '칼뱅 강당'이라 불리는 곳에서 영어권 피난민을 상대로 목회를 하면서, 칼뱅과 더불어 제네바의 종교개혁을 이끌었다. 스위스의 개혁교회 운동에서 배운 녹스는 1559년 5월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로 돌아왔다. 녹스는 성 자일스(St. Giles)교회에서 강력하게 종교개혁 운동을 펼쳤고, 1560년 의회는 녹스가 제시한 '스코틀랜드 신앙고백'과 '스코틀랜드 교회치리서'를 채택함으로써 역사상 처음 장로교회가 세워졌다.

현재 한국 개신교계의 약 70%를 차지하는 장로교는 그렇게 출발했다. 장로교회는 교회 구성원, 즉 회중(會衆) 대표인 장로들에 의해 다스려지는 구조를 뜻한다. 각각의 교회는 목사와 장로로 구성되는 당회(session)에 의해 치리되며, 노회(presbytery), 대회(synod), 총회(general assembly)의 상위 구조를 가진다. 신학적 측면에서 장로교회는 스위스의 개혁교회, 특히 제네바의 칼뱅주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장로교회의 확립은 대의(代議)제도의 도입이란 면에서 개신교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로마가톨릭교회는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하향식 의사 결정 구조였다. 목회자와 평신도 대표로 구성된 당회에서 주요 사항을 결정하고, 이를 상위 기구인 노회, 대회, 총회로 동심원을 넓혀가는 민주적 의사 결정 구조의 장로교회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조직 구성이었다. 장로 자격도 왕족, 귀족, 평민의 구분이 없었다. 대의민주주의의 초기 형태를 실제 신앙생활 가운데 실천한 것이다. 스코틀랜드 장로교 전통은 잉글랜드 청교도에게 전해졌고, 신대륙으로 떠난 청교도는 미국 장로교회를 세웠다. 한국 장로교는 미국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가 전한 복음으로 세워졌다.

1572년 11월 24일 죽음을 맞은 녹스의 장례식에서 섭정 모턴 백작은 이렇게 말했다. "여기 그의 일생 동안 어떤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이 누워 있다." 녹스는 임종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개인적
이익을 취한 점이 없으며, 인간을 기쁘게 하고자 노력한 점도 없으며, 내 개인의 정욕 혹은 다른 이들의 정욕을 만족시킨 일도 없으며, 단지 내게 허락하신 은사를 성실하게 사용하여 내가 감독한 교회의 덕을 세우기에 노력하였을 뿐이다." 교회를 바르게 세우고자 참된 목자의 삶을 살았던 녹스의 일생을 대변해 주는 말이자, 오늘날 크리스천이 되새겨야 할 말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11/20170111001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