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대로 알자

-59% 대 74%… 국산화 늘었지만 핵심소재 日의존은 여전

최만섭 2020. 6. 26. 05:45

-59% 대 74%… 국산화 늘었지만 핵심소재 日의존은 여전

조선일보

김성민 기자

    입력 2020.06.26 03:01

    [일본의 수출규제 1년] [中] 한국 소부장 산업 갈 길 멀다

    '-59% 대(對) 74%.'

    반도체 핵심 소재로 꼽히는 기체 불화수소 제조사인 일본의 쇼와덴코와 한국의 불화수소 업체 램테크놀러지의 최근 1년 영업이익 증감률이다. 작년 7월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수적인 불화수소·EUV(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플루오린폴리이미드 등 3소재를 수출 규제한 이후 한국 업체들은 영업이익이 급증했지만 일본 업체들은 오히려 손해를 본 것이다.

    소재 국산화와 다변화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은 큰 타격 없이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그렇다고 우리가 이겼다고 볼 수도 없다"고 했다. 우리 정부가 급히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 육성에 나섰지만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사례처럼 세계 각국이 소재·장비·부품을 무기로 정치·외교적인 이점을 취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어 한국이 지속적인 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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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발 타격 최소화 성공

    작년 7월 일본이 소재 3종에 대해 수출 규제에 나서자 우리 정부는 대대적인 소부장 산업 육성에 나섰다. 지난 1년간 일본이 규제한 3종 소재는 국산화와 다변화가 어느 정도 이뤄졌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특히 일본이 장기간 정상적인 수출 허가를 내주지 않았던 불화수소는 빠른 공급 다변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작년 1~4월 기준 전체 수입 불화수소 중 44.7%였던 일본산 비중은 올해 같은 기간 12.5%로 낮아졌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국내 업체인 솔브레인의 불화수소와 램테크놀러지가 중국에서 들여와 정제한 불화수소를 주로 쓰고 있다. 일본산은 핵심 공정에만 사용한다. 기체 불화수소도 일본산에서 미국산으로 바꿨고, 최근 SK머티리얼즈가 양산을 시작하면서 국산도 함께 사용 중이다. 한국 불화수소 업체들은 영업이익이 일본의 규제 전보다 5~74% 급증했다.

    반면 일본 소재 업체들은 주 고객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거래가 줄면서 매출과 영업이익이 급감했다. 본지가 작년 4월부터 올 3월까지 일본 소재 업체 실적을 분석한 결과, 불화수소 업체 스텔라케미파는 영업이익이 1년 전보다 31.7%, 다이킨공업은 3.9% 감소했다. 비상장사인 모리타도 30% 정도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접히는 디스플레이를 만들 때 필요한 플루오린폴리이미드는 일본의 수출 규제 때부터 세부 특성이 달라 국내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EUV용 포토레지스트는 지금도 일본에 100% 의존하고 있지만, 일본이 규제 발표 후에도 정상적으로 수출을 허가하고 있어 아직은 큰 문제가 없다. 미국 듀폰이 국내에 생산 공장을 짓기로 하면서 일본의 위협은 약해졌다는 평가다.

    ◇특수 소재 일본 의존 여전

    하지만 한국이 일본의 소재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긴 어렵다. 한국무역협회가 집계한 작년 대일 수입 상위 100개 품목을 분석해보면 실리콘웨이퍼·수치제어반·탄소부품·고정식축전기 등 34개 품목은 일본산 수입 비중이 2018년보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수 소재 분야에서는 일본 의존도가 여전한 것이다.


    반도체 원판인 실리콘웨이퍼의 작년 대일 수입액은 9억3000만달러, 대일 수입 비중은 40.7%였다. 1년 전(34.6%)보다 증가했다. 탄소부품도 대일 의존도가 47.8%에서 56.7%로 높아졌다. 고정식축전기는 대일 수입 비중이 6.1%포인트, 기타정밀화학제품은 2.7%포인트 늘었다.

    ◇빈번해진 소재 무기화

    소재와 부품, 장비를 정치적 목적으로 '무기화'하는 현상은 확산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 화웨이를 압박하기 위해 미국산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만든 반도체를 화웨이에 공급하지 못하도록 규제에 나섰다. 중국은 미국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무기와 첨단 과학기술 장비 제조에 필수 희귀 금속인 '희토류' 공급 제한을 저울질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 법원이 강제 징용 기업의 국내 자산 매각 절차를 진행하자, 추가 보복을 예고한 상황이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는 "정부가 나서 대학과 출연 연구소가 가진 소재·부품 기술을 국내 중견·중소기업에 지원하도록 해 이를 국산화할 수 있는 '내셔널 랩(Lab)'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