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위기 25년 동안 對北 정책 냉·온탕 오락가락
남·북·미 頂上 임기초 담판, 햇볕논쟁 결판낼 기회맞아
핵폐기면 민족 번영 門 열고 사기극이면 南南갈등 끝내야
북 비핵화 담판의 쾌속 행진을 보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할아버지, 아버지를 뛰어넘는 결단력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김정은의 판돈 지르는 솜씨가 과감한 것은 분명하지만 김일성, 김정일에겐 그런 기회 자체가 안 주어졌다. 김일성은 1976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카터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자 파키스탄 대통령을 통해 직접 만나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다. 카터 행정부가 출범한 직후엔 허담 외교부장이 밴스 국무장관에게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대화를 제안했다. 김일성은 미·북 양자 접촉을 원했지만, 미국은 한국이 낀 3차 협상을 고집했다. 카터 대통령은 김일성과 일대(對)일 거래를 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미국 공화당 행정부는 전통적으로 북한과 협상 자체를 꺼렸다. 트럼프 행정부도 그럴 줄 알았는데 의외의 반전이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전 대통령과 무조건 거꾸로 간다. 오바마의 이란 핵 협정은 뒤엎으면서 오바마가 손을 놨던 북핵 해결을 자기 성과로 삼는 선택을 했다. 김정은이 미 본토를 때릴 수 있는 ICBM 발사에 성공하며 미 국민의 관심도가 높아진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을 풀고 싶어도 한국 정부가 장단을 안 맞춰 줬으면 여기까지 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들 부시 대통령은 2기 행정부 때 2006년 9·19 공동성명, 2007년 2·13 합의로 북핵 협상 쪽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북핵에 대한 엄격한 검증을 요구하면서 탄력을 잃었다. 지난 25년의 핵 위기 과정에서 한·미 양국에 대북 협상파 정권이 공존했던 기간은 김대중·클린턴이 짝을 이룬 1998년 초부터 2001년 초까지 3년간이 전부였다.
북한 왕조엔 대통령 임기 같은 것은 없다. 그러나 최고 지도자의 생물학적 연령과 통치 기간에 따라 추진력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김일성은 카터 전 대통령과 핵 동결 합의를 한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이자 김영삼 대통령과의 남북 정상회담이 한 달도 안 남은 시점에 사망했다. 김정일은 김대중 대통령과 회담했던 50대 후반엔 한반도 냉전 구도를 흔들어보겠다는 의지가 엿보였지만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60대 중반엔 만사가 귀찮은 표정이었다. 김정일은 그 후 1년도 안 돼 뇌졸중을 겪었다. 김정은은 지금 혈기 왕성한 30대 중반이다. 집권 8년째를 맞아 자신감도 넘친다.
남북한과 미국 모두 판을 바꿔보자는 배짱이 맞은 지도자들이 그것도 임기를 상당 기간 남겨둔 상태에서 만났다. 자전 주기도 다르고, 음양이 오락가락 바뀌는 세 나라 별이 한 지점에서 서로를 끌어당긴 이번 같은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오는 6월 12일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핵 폐기 합의가 이뤄질 경우 그 이행 과정은 트럼프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20년 말까지 어떤 정치적 장애물도 맞닥뜨리지 않고 진행된다. 협상을 통해 북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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